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국조악장
국조악장
고전시가
개념
조선전기 궁중에서 국가의 공식적 행사인 제향이나 연향 때에 쓰이는 시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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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조선전기 궁중에서 국가의 공식적 행사인 제향이나 연향 때에 쓰이는 시가.
내용

고려와 조선의 궁중음악으로 불려진 노래 가사를 모두 포괄하지만, 흔히 ‘악장’이라면 우리 문학사에서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조선시대 초기(15세기)의 특정한 시가들에 붙여진 역사적 장르 명칭으로 사용한다.

즉, 조선이 건국되면서 동양적 통치 관례에 따라 예악(禮樂)을 정비(整備)하게 된다. 나라의 공식적= 행사인 제향(祭享)이나 연향(宴享) 혹은 각종 연회(宴會)에 쓰기 위하여 새로 지은 노래 가사들을 특별히 따로 묶어 시가 장르의 하나로 다루는데, 이것이 ‘악장’이다.

그러나 악장을 문학 장르로 설정하려면 통일된 형식과 성격을 보여야 한다. 그런데 작품에 따라 속요 · 경기체가 · 시경(詩經) · 초사체(楚辭體) 등 다양한 형태를 취하고 있어 장르로서의 통일성을 보이지 못하므로 각 작품이 지닌 형식이나 성격에 따라 본래의 장르로 되돌려야 한다는 견해가 대두되었다.

이 경우 문제는 우리 문학사에서 중요한 비중을 차지하는 <용비어천가 龍飛御天歌>나 <월인천강지곡 月印千江之曲> 같은 독특한 형식을 보이는 작품은 어느 장르에도 귀속시킬 수 없다는 난점이 있다.

또 <감군은 感君恩> 같은 작품도 형식에 따라 고려 속요에 편입할 경우 속요로서의 성격보다는 조선 초기 시가로서 갖는 특수성이 훨씬 강하게 반영된 작품이라는 사실을 무시하게 된다.

그래서 악장의 통일성을 형식보다 내용에서 찾아 창업주나 왕업을 찬양하고 기리는 송도적 성격(頌禱的 性格)을 공통적으로 지니고 있음에 착안하여 송도가(頌禱歌) · 송축가(頌祝歌) · 송시(頌詩) · 송도시(頌禱詩) · 아송문학(雅頌文學)이라는 명칭을 사용하자는 제안도 있다.

그러나 송도적 성격은 15세기 악장의 특수성이 아니라 멀리 신라 유리왕 때의 <도솔가 兜率歌> 이래로 흔히 발견되는 일반성이라는 점에서 적절하지 못하다.

또, 악장을 ‘∼시’, ‘∼문학’으로 부르자는 제안도 그 존재양태가 시나 문학으로서가 아니라 노래로서 향유되어왔다는 특수성을 무시한 명칭이므로 타당하지 못하다.

한편, 악장이라는 명칭을 궁중의 제향이나 연향에 쓰인 아악곡이나 속악곡으로 불린 한문으로 된 노래에 한정해서 쓰고 그밖의 각종 연회에서 당악과 향악으로 부른 노래를 가사(歌詞)라는 명칭으로 따로 설정하자는 제안도 있다.

그러나, 아악곡이나 속악곡으로 불린 노래와 당악이나 향악으로 불린 노래를 다시 분리해야 할 만큼의 각각의 독자성을 인정하기는 어려우므로 역시 적절하다고 할 수 없다. 현재로서는 악장이라는 말이 널리 통용될 뿐 아니라, 궁중의 음악으로 쓰인 노래라는 특수성이 반영된 명칭이어서 가장 적절하다 하겠다.

악장은 언어형식에 따른 표기 체계상의 차이에 따라 한문악장 · 국문악장 · 현토악장(懸吐樂章)의 세 가지 유형이 있다. 한문악장은 악장의 본래 영역으로서 양적으로나 음악적 비중으로 중심위치를 차지한다. 정도전(鄭道傳) · 하륜(河崙) · 변계량(卞季良)이 대표적 작가이며, 4언구 중심의 시경체와 장단구(長短句) 중심의 초사체가 대표적 형식이다.

그러나 이러한 정통형식의 악장보다 우리말 시가인 경기체가나 속요의 영향을 받아 이루어진 후렴구 형식의 한문악장이 더욱 중요하다. 경기체가의 영향을 받은 <축성수 祝聖壽>나 고려속요의 영향을 받은 <정동방곡 靖東方曲> · <천권곡 天眷曲> · <응천곡 應天曲> · <악장종헌 樂章終獻> 등이 그에 해당한다.

이들은 모두 3언 4구(3·3·3·3)의 한시에 ‘위(偉)∼’라는 특정한 후렴구를 붙인 분절형식과, 여러 연(5장 또는 10장)이 거듭되는 연장형식(聯章形式)으로 이루어져 있다.

국문악장은 한문악장에 비해 작품수가 훨씬 적지만 앞 시기의 고려 속요의 형식을 수용하여 새로운 세계관을 드러내어 기존 장르에 변화를 가져왔다는 측면에서 주목된다. 이에 해당하는 작품 중 <신도가 新都歌>나 <불우헌가 不憂軒歌>는 단련형식(單聯形式)이다.

그러나, <신도형승곡 新都形勝曲> · <도인송도곡 都人頌禱曲> · <유림가 儒林歌> · <감군은> 등은 10장 이내의 연장형식과 일정한 수의 행을 바탕으로 이에 후렴구를 덧붙여 연을 구성하는 분절형식으로 되어 있어 앞 시대의 속요 장르를 수용하였음을 알 수 있다. 그러나 율격면에서는 속요의 3음보격을 그대로 따르지 않고 있다.

또 후기의 국문악장인 <용비어천가> · <월인천강지곡>에 오면 연장형식을 수용하되 100여장을 훨씬 넘는 장편화 현상을 보인다. 분절형식에 있어서도 뒷절이 후렴구의 성격을 완전히 벗어나 앞절과 대등한 자격으로 상승함으로써 형식면에서 속요와는 판이한 독자적인 모습을 보인다.

현토악장은 기존의 한시 작품에 우리말 토를 달아 지은 것이 대부분으로 작품세계의 독자성보다 한시를 국문시가화하는 형태적 이행의 과정이 주목된다.

예를 들면 <문덕곡 文德曲> · <납씨가 納氏歌> · <정동방곡>은 원래 한문악장으로 지어졌던 것을 뒤에 현토악장으로 바꾼 것이고, <횡살문 橫殺門>은 두보(杜甫)의 칠언절구 <증화경 贈花卿>을 현토하여 만든 것이며, <관음찬 觀音讚>은 고려시대부터 있던 것을 현토화한 것이다.

특히 <경근곡 敬勤曲> · <문덕곡> · <횡살문>의 경우 4구나 6구로 된 원사(原詞)에 낙구나 후렴구를 덧붙여 현토악장을 만드는 원리는 우리 시가의 전통적인 분절형식에 근거하고 있어 주목된다. 여하튼 현토악장도 10장 이내의 연장형식과 낙구나 후렴구에 의한 분절형식으로 되어 있음은 다른 악장과 같다.

단, <봉황음 鳳凰吟>과 <북전 北殿>은 단련(單聯)으로 된 데다가 칠언시로 꼭 맞아 떨어지지 않는 걸로 보아 처음부터 현토악장으로 창작된 듯하다. 이렇듯 악장의 형식적 원리가 연장형식과 분절형식에 두어져 있음에 착안하여 하나의 장르로서 묶는 중요한 통일성의 근거가 된다는 견해가 나온 바 있다.

악장의 중심 담당층은 15세기 조선왕조를 건국하고 그 기틀을 확고히 다져나간 신흥사대부 가운데 핵심 관료층이다. 당시 권신(權臣)이면서 문(文)의 흐름을 부도하고 있었던 정도전, 하륜, 변계량, 권근(權近), 윤회(尹惟) 등이 대표 작가이다.

작품의 내용은 고려 후기의 혼란과 모순을 극복하고 새 왕조의 건설을 이룩한 창업주나 왕업을 찬양하고, 그들의 성덕을 기리는 내용이 중심을 이룬다. 그 밖에 새 왕조의 문물제도나 도읍을 찬양하고 과시하며 태평성대와 임금의 은혜를 기리는 내용이 대부분이다.

따라서, 이러한 주제에 걸맞는 표현효과를 획득하기 위하여 문체에 있어서는 문어체적 성격을 지향하며, 시적 정조(詩的情調)에 있어서는 장중함과 외경스러움을 짙게 드러낸다.

또 기존양식의 수용에 있어서도 근엄한 한시양식이나 찬양하고 과시하기에 적절한 경기체가양식을 집중적으로 선택하였다. 혹 속요양식을 택하더라도 그 후렴구를 경기체가의 그것과 혼합하든가(감탄사 ‘偉∼’로 시작되는 후렴양식), 아예 삭제하여 새롭게 변화시키고 있다. 표현어법에 있어서도 송도적 성격이 강하게 드러날 수 있도록 배려하였다.

한문악장과 국문악장은 그 나름의 전통과 역사적 논리를 가지고 전개되었다. 그러면서도 표기체계나 유형적 개별성을 흐트러뜨리지 않고 이를 뛰어넘어 한문악장이 국문악장 쪽으로 통합되어가는 양상을 보이며, 그 중간단계의 징검다리 역할을 현토악장이 담당한 것으로 보인다.

우선 한문악장은 악장의 중심위치에서 중국의 원구악장(圓丘樂章)이나 방구악장(方丘樂章)의 영향을 입어 종묘의 제향이나 연향에 쓰임으로써 생성, 향유되었다. 그 중에서 <융안 隆安> · <수보록 受寶籙> · <문명곡 文明曲> · <무열곡 武烈曲> · <휴안 休安> · <근천정 勤天庭> · <하황은 荷皇恩> · <수명명 受明命> 등은 연향에 사용한 아악곡의 악장에 해당한다.

또한, 형식에 있어서는 ≪시경≫의 풍(風) · 아(雅) · 송(頌)이나 ≪초사 楚辭≫의 영향을 받아 형성되었으니 <궁수분곡 窮獸奔曲> · <수명명> · <수보록> · <하황은> · <하성명 賀聖明>은 ≪시경≫의 아체(雅體)를, <문명곡> · <무열곡>은 송체(頌體)를 수용한 것이다. <몽금척 夢金尺>은 초사체를 수용하여 창작한 사례에서 확인할 수 있다.

그러나 이들 한문악장의 독자적인 전개에도 불구하고 한편에서는 조선의 건국 초기부터 국문시가의 영향을 받아 고려속요와 경기체가의 분절양식, 특히 낙구나 후렴구의 형식적 전통을 수용함으로써 한시의 전통을 벗어나게 되었다.

<정동방곡> · <천권곡> · <응천곡> · <축성수> 등 후렴구가 있는 한문악장이 그에 해당한다. 한편 한문악장은 거꾸로 국문악장의 생성 발전에 영향을 주게 되는데, 주로 작품의 소재나 주제, 내용의 측면에서 그런 현상을 보인다.

현토악장이 본격적으로 만들어지기 시작한 것은 훈민정음이 창제되면서부터이다. 처음에는 이미 한문악장으로 창작된 것들이나 고려시대부터 있었던 작품, 혹은 중국의 한시에 현토하는 방식을 취하다가 뒤에는 순수한 창작의 현토악장으로 발전하기에 이른다.

그러나 악장 가운데 가장 주목의 대상이 되는 것은 국문악장이다. 한문악장에 비해 양적으로는 열세하지만 한문악장의 내용과 국문시가의 형식적 전통을 함께 수용하여 변용시킴으로써 형식이나 내용에 있어서 기존의 장르와는 전혀 다른 독특한 양식으로 악장을 발전시켰기 때문이다.

즉, 처음에 국문악장은 고려속요나 경기체가 등 기존의 국문시가 장르의 형식적 전통을 수용하여 분절형식과 연장형식에 기대면서, 형식의 문제와 관련하여 여러 가지 방법을 시도하게 된다.

이러한 과정을 거치다가 <용비어천가>에 이르르면 연장형식이 장편화되어 그 양이 방대해지고, 분절된 각 장의 앞 절과 뒷 절의 구성이 대등해지는 독특한 형식을 갖추게 된다. 이러한 발전을 통해 비로소 악장 특유의 양식을 창출하는 데 성공했던 것이다.

이렇게 완성된 독특한 표현양식을 <월인천강지곡>에 그대로 적용하여 장르의 정착과 확대를 꾀하고 있었다. 그렇지만, 그것을 일반화시키는 정도까지 나아가지는 못했으므로 결국 악장은 미완의 장르로 남게 되었다.

따라서 현존하는 악장의 거의 모든 작품들은 장르로 확립된 뒤의 작품이라기보다 장르로 형성되어가는 과정의 작품이므로 그 장르적 통일성을 쉽게 발견하기 어려웠던 것이다.

악장의 장르적 성격은 그 중심을 송도성에 기반한 교술적 세계관을 단편악장이라는 서정적 형식에 담아 표현한 ‘교술적 서정’으로 규정할 수 있다. 그러나 <용비어천가>와 <월인천강지곡>에 이르러 서사적 모티프를 전면적으로 수용함으로써 서사적 성격까지 통합하는 독특한 양상을 보이게 되었다.

궁중에서 연행되는 송축(頌祝)의 뜻을 담은 음악에 대한 총칭인 악장의 종류는 그 용도에 따라 조회(朝會) · 종묘(宗廟) · 사직(社稷) · 풍운뇌우(風雲雷雨) · 산천성황(山川城隍) · 선농(先農) · 선잠(先蠶) · 우사(雩祀) · 문선왕석전(文宣王釋奠) · 둑제(纛祭) · 문소전(文昭殿) 등과 기타 궁중행사에 부르던 것으로 나눌 수 있다.

작품을 살펴보면 고려의 악장으로 태묘(太廟) 악장 외에 몇 편이 ≪고려사≫ 악지에 보이나 사설만 있고 악곡은 전하지 않는다. 조선의 악장으로 ≪세종실록≫ 권136에 보이는 아악보 중 26개의 황종궁조(黃鐘宮調)에는 악곡과 가사가 함께 전하는데 자구(字句)는 불규칙적이다.

또, 같은 책 권137에는 ≪대성악보 大晟樂譜≫의 악장이 전하는데 4자 1구의 8구로서 규칙적인 1자 1음의 음악으로 16궁(宮)이 보인다. 같은 책 권138·139에는 <정대업 定大業> · <보태평 保太平> · <발상 發祥> 등의 악장과 곡보가 1행 32정간(井間) 악보에 수록되어 있다.

이것들은 1자 1음식에서 탈피하여 1자 여러 음의 선율적 방법이 주로 쓰였음이 주목된다. 가사도 3·4·5언 등이며, 구도 10·12·18·24구 등으로 확대되어 자유로운 면을 보인다.

역시 ≪세종실록≫ 권140∼146에는 <봉래의 鳳來儀> · <여민락 與民樂> · <치화평 致和平> · <취풍형 醉豊亨> · <봉황음> · <만전춘 滿殿春> 등의 악장이 곡보 위에 국한문 혼용으로 보이는데 이들은 순한문악장보다 음악적으로 더 선율적이며 다양한 특징을 가지고 있다. 또, 같은 책 권147에는 사직악장 · 종묘악장을 비롯한 각종 악장이 있으나 가사만 보인다.

그리고 ≪세종실록≫ 악보 권48에는 새로 지은 원구 악장과 악보가 전하고, 또 ≪신제략정악보 新製略定樂譜≫에 종묘제례악의 악장과 악보가 1행 16정간보에 기록되어 있는데 이는 세종 때 만들어져 세조 때 개작된 현존하는 유일의 종묘제례악장이다.

성종 때의 ≪악학궤범≫ 권2에는 아악부(雅樂部) 제악(祭樂)과 속악부(俗樂部) 등의 가사만 보이며, ≪대악후보 大樂後譜≫와 ≪속악원보 俗樂源譜≫에도 많은 악장이 곡보와 함께 전한다.

현존하는 대표적 악장인 종묘제례악장의 음악적 특징으로는 다음과 같은 것들이 있다. 각기 다른 23개의 가사에 곡은 22곡이다. 선율 진행에 있어서는 합주악기(관악기 · 현악기 · 타악기) 선율과 노래(악장)의 선율이 서로 다르고 변화가 심하다.

즉, 합주 선율에 대하여 노래는 2·3·4·5·6도 등의 도수로 어떤 중심음의 앞이나 뒤에서 장식적 · 대위적으로 다양화시켜 진행한 다음 동음으로 진행한다. 장2도를 의식적으로 첫박이나 중간 · 끝에서 부딪히게 한다.

이응(ㅇ)발음을 어금니를 물어서 소리내며 끝자음의 발음을 분리하여 뒤로 붙이되, 막히는 자음은 음시가 맨 끝에 둔다. 사설의 발음이 끊어지거나 뻗기에 곤란할 경우에는 ‘애’로 발음한다.

자수도 3·4·5언 등 일정하지 않으며 구수도 곡에 따라 길이가 다르다. 노래 중 모음은 끝을 길게 끌어 흘려 내리거나 평으로 뻗으며, 고성이나 저성에서의 창법이 동일하게 통목으로 부른다. 음계는 <정대업> · <보태평>의 음계 출현음을 넘나들지 않는다.

한편, 음악만 전해오던 문묘제례악장도 1980년부터 옛 문헌인 ≪반궁예악서 頖宮禮樂書≫ · ≪대성악보≫ 악서(樂書) 등에 준하여 복원해서 부르고 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世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악학궤범(樂學軌範)』
『대악후보』(서명응, 국립국악원본)
『속악원보』(국립국악원본)
「악장시가(樂章詩歌)의 형태사적 고찰」(윤귀섭, 『국어국문학』 34·35합집, 1967)
「선초악장(鮮初樂章)의 연구」(성호주, 부산대학교 석사학위논문, 1974)
「선초송도시(鮮初頌禱詩)의 성격고찰」(김문기, 『조선전기의 언어와 문학』, 형설출판사, 1976)
「악장가사고(樂章歌詞考)」(최정여, 『백강서수생박사 환갑기념논총(白江徐首生博士 還甲紀念論叢)』, 1981)
「한시현토체악장(漢詩懸吐體樂章)의 일고찰」(성호경, 『경남대학교논문집』 8, 1981)
「악장(樂章)」(성기옥, 『국문학신강』, 새문사, 198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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