안도치 ()

고려시대사
인물
고려후기 흥왕사의 변란과 관련된 환관.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미상
사망 연도
1363년(공민왕 12)
본관
미상
출생지
미상
주요 관직
환관
관련 사건
흥왕사의 변란
목차
정의
고려후기 흥왕사의 변란과 관련된 환관.
생애 및 활동사항

1361년(공민왕 10) 홍건적의 침입으로 복주(福州: 지금의 안동)로 남천(南遷)했던 공민왕이 1362년 전란이 평정된 뒤 환도하여 1363년 2월에 흥왕사(興王寺)를 시어궁(侍御宮)으로 삼고 그곳에 머물고 있었다. 같은 해 윤3월에 부원배(附元輩)들과 결탁한 김용(金鏞)은 반원개혁을 시도했던 공민왕을 살해하기 위해 흥왕사에 그의 도당 50여 명을 보내 왕을 시해하려고 하였다.

이때 왕을 호위하던 인원들은 모두 달아났고, 그 와중에 환자 안도치[安都赤]·첨의평리 왕재(王梓), 판전교시사 김한룡(金漢龍), 우정승 홍언박(洪彦博) 등이 죽임을 당하였다. 특히 환관 안도치는 자기의 생김새가 왕과 비슷했으므로 왕 대신 죽을 것을 결심하고, 환관 이강달(李剛達)로 하여금 왕을 업고 창문으로 피신하게 한 이후 자신은 왕의 침전에 누워 있다가 왕으로 오인한 적도들에게 살해되었다. 안도치의 열전이 『고려사(高麗史)』 권122, 열전35 환자전(宦者傳)에 실려 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고려사절요(高麗史節要)』
「고려 공민왕대 중엽의 정치적 변동」(민현구,『진단학보』107, 2009)
집필자
신안식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