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몽전쟁(麗蒙戰爭) 중 몽고에 투항하였거나 유망(流亡)한 고려인들을 심양과 요양(遼陽)에 거주시키고, 1234년(고종 21)홍복원(洪福源)을 관령귀부고려군민장관(管領歸附高麗軍民長官)에 임명하여 다스리도록 하였던 것을 1261년(원종 2)에 개편한 것이다.
이해에 만가노(萬家奴)를 총관부의 다루가치(達魯花赤)로 삼았으며, 1263년에는 그 전에 토루카(禿魯花)로서 원에 보내졌던 고려 왕족 영녕공 준(永寧公綧)을 안무고려군민총관에 임명하여 심양의 고려인 2,000여 호(戶)를 다스리게 하였다.
한편, 홍복원의 아들인 홍다구(洪茶丘)도 1261년에 관령귀부고려군민총관에 임명되어 심양의 안무고려군민총관부와는 별도로 요양의 고려인들을 다스렸다.
이 후 영녕공과 홍다구의 아들들이 안무사(安撫使)·고려군민총관의 관직을 세습하면서 각각 심양과 요양의 고려인들을 통치하다가 1296년(충렬왕 22)에 심양등로안무고려군민총관부(瀋陽等路安撫高麗軍民摠管府)로 통합되어 제주의 탐라군민총관부(耽羅軍民摠管府)와 함께 정동행성(征東行省)에 소속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