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라의 영토가 된 뒤 경덕왕 때 야산(野山)으로 고쳐 금마군(金馬郡)의 영현으로 하였다. 고려 때 낭산(朗山)으로 고쳐 전주에 붙였고, 공양왕 때 여량감무(礪良監務)가 함께 다스리도록 하였다. 1400년(정종 2)에 두 현을 합쳐서 여산(礪山)이라고 하였다.
이곳에는 둘레가 3,900척에 우물이 두개인 알야산성이 있었는데, 이는 소백산맥 서쪽에 있어 백제를 방어하는 중요한 산성으로 조선시대까지 존속하였다.
이곳은 578년(진지왕 3) 신라군의 습격과 백제 · 신라 간의 충돌이 잦았던 지역이다. 또한 금강하류의 동남쪽을 차지하여 여산과 석성(石城)을 연결하는 구실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