편저자는 선우일(鮮于日)이다. 선우일은 1906년에는 『국민일보』 기자였고, 1915년에는 『대한매일신보』 발행인 겸 편집인을 맡았으며 1919년에는 일제의 후원 아래 『만주일보』의 발행인이었다.
1913년에 박문서관(博文書館)에서 출간되었다. 별다른 서문이나 발문 없이 목차를 제시한 후 바로 이야기를 수록하였다. 수록된 이야기는 총 102편이다.
작품 표지는 ‘골계박사 앙천대소(滑稽博士 仰天大笑)’로, 내제는 ‘앙천대소(仰天大笑)’로 되어 있다. 수록된 작품은 102편인데, 여기에 실린 작품은 앞선 시기에 향유되어 온 우스갯소리도 있지만, 대부분은 당시 사회 현상에 관한 조롱과 비판이 중심이다. 형식적인 면에서 보면, 한시의 형태를 취한 것이 있는가 하면 "舌端+好辯-實言=虛言"처럼 수학적인 기호를 사용하기도 하고 법 조항 및 계약서의 양식을 취하기도 한다. 서술 형태를 따르는가 하면, 대화체 방식을 따르기도 하는 등 그 형식적인 특징을 일률적으로 단정할 수 없다. 다만 국문과 한문을 혼용하여 쓰긴 하지만, 그럼에도 한문이 중심을 이룬다는 점에서 지식인층을 독자로 염두에 두었음을 알 수 있다.
수록된 작품의 내용은 당대의 세태와 관련된 것이 많다. 오락적 흥미를 구실 삼아 당대의 다양한 현실 문제를 담아내려 했던 데에 목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이러한 면모는 첫 이야기에서부터 드러난다. '우리들은 쌀이로다'라는 제목을 붙인 이야기에는 쌀이 우리에게 주는 메시지를 들려 준다. 쌀은 근면에 힘쓰지 않고 유희하는 사람, 특히 ‘하이카라病’에 걸린 사람들을 경계하고, 경계는 더 나아가 계몽으로 이어진다. “速히 悔悟ᄒᆞ야 虛樂을 棄却ᄒᆞ고 하이카라病을 痛袪ᄒᆞᆫ 後, 鋤를 執ᄒᆞ고, 田을 耕ᄒᆞ라. 田地가 不足ᄒᆞ면 荒蕪地를 開墾ᄒᆞ라. 空閑地를 利用ᄒᆞ라. 然則 食料가 豊饒ᄒᆞ야 輸入을 減ᄒᆞ고 國富를 增進ᄒᆞᆷ이 無疑ᄒᆞᆯ지나.” 궁극적인 목표는 나태한 사람을 경계하는 것을 넘어서서 부유한 국가를 만들어 보자는 데 있다. 「가정보험주식회사(家庭保險株式會社)」는 보험 약관 형식을 빌린 것인데, 여기에서는 가정 내에서 부부 간에 싸움을 하지 않고 이혼하지 않기, 시어머니는 며느리를 학대하지 않기, 아내는 질투하지 않기, 고용인은 오랫동안 회사에 남아 있기, 학생들은 학업에 충실하기 등을 역설적으로 주장한다. 선우일은 독특한 방식으로 당시 사회가 안고 있는 문제들을 풀어냈다. 이처럼 이 책에 수록된 자료들 중에는 훈계조이거나 신문물 및 그에 대한 의식을 나타내 주는 것이 많다.
『앙천대소』는 당시 세태를 비판하고 사회 풍속을 개량하고자 하는 데에 목적을 둔 재담집으로, 당시 웃음과 재담의 관계를 살피는 데에 유용한 텍스트다. 이 책은 1917년에 재판이 나오는 등 일정한 독자층을 확보했지만, 논설이 위주였기 때문에 상대적으로 독자층은 한정될 수밖에 없었다. 그 때문에 박문서관에서는 『앙천대소』를 바탕으로 한 새로운 책을 출간하였는데, 그것이 바로 1916년에 출간된 『ᄭᅡᆯᄭᅡᆯ우슴』이었다. 『ᄭᅡᆯᄭᅡᆯ우슴』은 『앙천대소』의 이야기를 대폭 수용하되, 사회 개조를 위한 웅변이나 세태에 대한 조롱과 조소는 모두 배제하고, 오로지 웃음을 위한 작품만을 수록하였다. 표기 체제 역시 순수한 국문으로 전환을 꾀하였다. 『ᄭᅡᆯᄭᅡᆯ우슴』을 통해 대중적 오락성을 확보하였는데, 1926년에 8판이 나오기도 했을만큼 그 독자층이 확대되었다. 이러한 이유로 『앙천대소』는 이후의 재담집이 나아가는 방향성을 제시한 첫 작품이라고 볼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