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야휘집』은 이원명(李源命)이 1869년에 편찬하였다. 이원명은 1829년에 문과(文科)에 급제한 후, 이조판서(吏曹判書)까지 지내고 벼슬에서 물러났다. 시호(諡號)는 문정(文靖)이다.
『동야휘집』의 이본(異本)은 현재까지 서울대학교 도서관에 4종, 연세대학교 도서관에 2종, 성균관대학교 도서관에 1종, 숙명여자대학교 도서관에 1종, 국립중앙도서관에 2종, 김상기 소장본 1종, 한국학중앙연구원본 1종, 천리대본 1종 등이 있다. 그중에서도 선본(善本)은 일본 오사카시립도서관(大阪市立圖書館)에 소장된 16권 8책본이다. 오사카시립도서관은 10행, 매행 22자로 균일하다. 책 앞에는 서문(序文)을 실었고, 서문 다음에는 범례(凡例)로 8개의 항목을 넣었다. 이어서 총목(總目)을 수록했고, 총목 맨 마지막 행에는 ‘범이백삼십권(凡一百三十㢧)’이라 했는데, 여기에 실린 이야기 총수가 260편임을 확인케 한다.
이 책을 편찬한 이유에 대해 저자는 자서(自序)에서 밝힌 바 있다. “패관(稗官)과 야승(野乘)은 성현(聖賢)의 책이나 역대 문집을 공부하는데 이롭지 못하므로 참으로 문장가들이 즐겨 볼 게 아니다. 그러나 이상하고 신기한 볼거리를 찾음은 역사책에서 빠트린 것을 보충함으로써 담소 자료를 제공하므로, 문장가들이 내버릴 수도 없는 것이다.”라고 하였다. 이어서 자료의 원천에 대해서도 밝혔다. “내가 긴긴 여름 동안 병을 조리하다가 우연히 『어우야담(於于野談)』과 『기문총화(記聞叢話)』를 보았더니 자못 눈을 뜨게 하는 대목이 많았다. 그러나 기억력이 약해져서 만에 하나의 대강조차 짐작할 수 없었다. 그래서 이 2책 중에서 편이 크고 이야기가 길어 옛날 역사[古史]를 증명할 수 있는 것들은 요약하고, 다른 책에서도 널리 아는 데 도움이 될 만한 것을 모아 윤색(潤色)하여 기록하였고, 민간에 떠도는 옛날 이야기[古談]도 채집하여 글로 옮겨 함께 수록하였다.”라고 하여, 『어우야담』과 『기문총화』, 그 외의 다른 책, 그리고 민간에서 구전되던 자료 등을 모았음을 밝혔다. 실제 『동야휘집』에 실린 이야기 중에는 명의 풍몽룡(馮夢龍)의 『정사(情史)』라든가 청(淸)의 심기봉(沈起鳳)의 『해탁(諧鐸)』 등을 수용 및 변용하기도 했다. 『동야휘집』의 편찬 시기는 1869년이다. 이 해는 저자가 모든 공직(公職)에서 물러난 62세 때이다.
서문에는 편찬 경위와 함께 “매 편의 머리에는 제구를 표시하였는데 이는 소설의 격식을 따른 것이고, 각 단락 아래에는 논평을 붙였는데 이는 사전의 범례를 모방한 것이다.”라고 하여, 편자가 생각하는 소설과 사전(史傳)을 뒤섞은 새로운 야담을 지향했음을 확인케 한다. 또한 범례에는 “이 편은 오로지 야담만을 취하여 책을 만들었다. 그 때문에 패사 소설(稗史小說)에 소재한 것은 대부분 채록하지 않았으며, 그중 고담(古談)에 가까운 것이 있으면 모두 수록하였다.”라고 하여, 야담이 패사 소설과 얼마간 관련되지만, 패사 소설은 아니라고 했다. 오히려 고담에 가깝다고 했다. 이원명이 생각하는 야담 인식의 일단을 가장 잘 드러냈다고 할 만하다. 『동야휘집』에 수록한 작품의 총목은 다음과 같다.
권수 | 부 | 부류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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제1권 | 은수부(恩數部) | 【과환(科宦)1】 | |||||
유현부(儒賢部) | 【 도학(道學)1 현재(賢才)2】 | ||||||
장상부(將相部) | 【현상(賢相)3】 | ||||||
제2권 | 장상부(將相部) | 【천장(天將)1 명장(名將)5】 | |||||
제3권 | 절의부(節義部) | 【충절(忠節)3 효행(孝行)1 정렬(貞烈)3 충의(忠義)1】 | |||||
제4권 | 기예부(技藝部) | 【문장(文章)3 서화(書畵)2 금기(琴棋)1】 | |||||
제5권 | 방술부(方術部) | 【천문(天文)1 지리(地理)3 의약(醫藥)2 복서(卜筮)2】 | |||||
제6권 | 도류부(道流部) | 【신술(仙術)2 도인(道人)1 방사(方士)1 좌도(左道)1 승도(僧徒)2】 | |||||
제7권 | 성행부(性行部) | 【은륜(隱淪)2 도회(韜晦)2 감식(鑑識)2 재지(才智)2】 | |||||
제8권 | 성행부(性行部) | 【용력(勇力)3 기개(氣槩)2 호사(豪侈)1 권귀(權貴)1 풍류(風流)1 부요(富饒)1 유개(流丐)1 구도(寇盜)2】 | |||||
제9권 | 인사부(人事部) | 【적선(積善)2 시의(施義)2 수은(酬恩)3 보수(報讎)2】 | |||||
제10권 | 인사부(人事部) | 【권술(權術)4 회해(詼諧)3 감화(感化)2 경계(警戒)2】 | |||||
제11권 | 부녀부(婦女部) | 【덕행(德行)1 기혼(奇婚)2 가연(佳緣)2 이적(異蹟)2 지식(智識)2】 | |||||
제12권 | 부녀부(婦女部) | 【재혜(才慧)2 투한(妬悍)1 구한(仇恨)1 기우(奇遇)1 지조(志操)1 정의(情義)1 재기(才妓)1 명창(名娼)1】 | |||||
제13권 | 잡지부(雜識部) | 【창화(倡和)1 이합(離合)1 궁통(窮通)1】 | |||||
제14권 | 잡지부(雜識部) | 【유람(游覽)1 기적(奇蹟)1 재능(才能)1 횡재(橫財)1 식화(殖貨)1 보복(報復)1 기의(氣義)1】 | |||||
제15권 | 술이부(述異部) | 【영이(靈異)1 신기(神奇)1 무축(巫祝)1 명우(冥遇)1 사마(邪魔)1 유괴(幽怪)1 이배(異配)1 물감(物感)1 보주(報主)1 성력(誠力)1 음덕(陰德)1】 | |||||
제16권 | 습유부(拾遺部) | 상업(相業)1 직간(直諫)1 풍정(風情)1 규풍(規風)1 괴사(怪事)1 경오(警悟)1 선적(仙蹟)1 청복(淸福)1 환몽(幻夢)1】 | |||||
〈표〉 동야휘집 권별 수록내용 |
이처럼 대항목으로 모두 13부로 나누었고, 그 부 아래 하위 분류로 하나에서부터 13개의 유(類)로 구분해 놓았다. 유는 총 85개에 이른다. 또한 제목은 모두 칠언(七言)이나 팔언(八言)으로 된 한문 제목을 붙였다. 이런 형식의 화제(話題)를 제시하는 것은 임방(任埅)의 『천예록(天倪錄)』 이후 『청구야담』 등에서도 보이는 바다. 2개의 작품이 끝나면, 두 작품을 한데 묶어 논평을 붙였다.
이원명이 스스로 새로운 야담을 만들겠다고 했던 것처럼, 『동야휘집』의 수록 작품은 기존 야담을 수용하면서도 의도적으로 바뀌거나 새롭게 고친 경우가 많다. 또한 여러 개의 삽화를 묶어 한 작품으로 만들기도 하는 등 상당한 변화를 보인다. 또한 장한철(張漢喆)의 『표해록(漂海錄)』이나 박두세(朴斗世)의 『요로원야화기(要路院夜話記)』 같은 작품들도 포함하였다.
조선 후기 야담은 대체로 이전의 야담집이 전대 야담을 다시 기록하거나 부분적으로 새로이 고치는 데에 집중하는 방식으로 향유되었다. 하지만 그와 달리 『동야휘집』은 의도적으로 새로운 야담집을 시도했다. 이 점에서 『동야휘집』은 당시 야담의 자기 갱신 양상을 잘 보여 주는 대표적인 야담집이라 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