밤이 깊어 신숙주는 초췌한 얼굴로 대궐에서 돌아온다. 윤씨 부인은 남편의 표정을 보고 수양대군이 단종을 주1으로 만들고 정변을 일으켰으리라 짐작한다. 신숙주가 문종에게서 받은 갖옷을 어루만지며 눈물도 흘린다. 갖옷은 문종이 임종 시에 집현전 학사에게 어린 단종을 부탁하며 내린 하사품이었다.
어린 단종이 왕위에 오르자 수양대군은 주위 세력을 모아 김종서 등 반대 세력을 처형하고, 왕좌를 차지한다. 세조는 신숙주의 문장과 재주를 사랑하여 자기에게 돌아설 것을 요구한다. 신숙주는 여덟 아들을 위해 세조를 따르겠다고 약속한다. 반면 성삼문 등은 세조를 죽이고 단종을 다시 임금으로 세우고자 한다.
그러나 여기에 가담했던 김질이 장인 정창손에게 사실을 밀고하고, 이에 피의 숙청이 계속된다. 평소 성삼문과 가깝게 지냈던 신숙주는 자신의 비열함을 탄식하며 괴로워한다. 신숙주는 부인 윤씨에게 자신이 절개와 지조를 저버린 것을 고백하려 하나 차마 말하지 못한다.
성삼문과 박팽년 등은 고문을 당하면서도 세조를 꾸짖었고, 결국 이들은 노들강 건너편 새남터로 끌려간다. 신숙주는 자신의 비굴함이 부끄럽다. 한편 바느질하던 윤씨 부인은 학사들이 단종 복위를 기도하다 발각되어 새남터로 잡혀갔다는 하인의 보고를 듣고 남편을 따라 죽기로 작정한다.
그러나 죽지 않고 오히려 대신이 되어 돌아온 남편의 행차를 보고, 윤씨 부인은 남편을 몹시 원망한다. 그리고 이튿날 윤씨 부인은 대들보에 목을 맨 시체로 발견된다.
「신숙주부인전」은 월탄 박종화가 1923년 『백조』에 발표한 역사소설 「목 매이는 여자」를 고소설 형태로 옮긴 것이다. 겉표지와 판권만 고소설 형태를 취하였을 뿐 내용은 「목 매이는 여자」와 동일하다. 저자로 명시된 고병교도 출판사 발행인일 뿐이다. 이것은 당시 고전소설이 저작권 문제에서 비교적 자유로웠기에 가능했던 일이다. 그럼에도 분명한 작가가 확인된 작품까지 이렇게 제목과 외양만 바꿔 출판하는 일은 당시 문화사적 측면에서 매우 중요한 시사점을 제공한다.
「신숙주부인전」에 실린 윤씨 부인의 행적은 사실과 다르다. 윤씨 부인은 단종 복위 사건이 있기 전에 병으로 죽었다. 그럼에도 박종화의 독법, 즉 신숙주 부인이 남편을 원망하며 자결하는 방식은 이후 신숙주 부인 일화가 마치 사실인 것처럼 정착되는 데에 결정적인 역할을 했다. 거기에 박종화 소설을 「신숙주부인전」처럼 고전소설 방식으로 재편하여 읽히면서 신숙주 부인 일화는 사실로 굳어졌던 것으로 보인다. 이후에 나온 신숙주 관련 다양한 텍스트들은 이 틀에서 크게 벗어나지 못했다. 실제 조용만이 1933년 『조선중앙일보』에 8회로 연재한 「신숙주와 그 부인」도 이들 작품의 영향을 입어 창작된 것이라 할 만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