젊은 나이에 세상을 떠난 부인 곽씨의 관(棺) 속에 넣어 시신과 함께 매장하였던 것인데, 1978년 후손들이 선대의 산소를 이장(移葬)할 때 발견됨에 따라 세상에 공개된 것이다. 400여 년 동안 무덤 속에 묻혀 있던 이 애도문은 미이라화된 시신 위에 놓인 채 한지의 색만 약간 변색되었을 뿐, 육필(肉筆)의 묵색은 매우 선명하게 남아 있었다.
체제는 가로 83㎝, 세로 53㎝로 두 장의 한지를 이어붙여 쓴 것이며, 매행 23자 내외로 29행이 쓰여 있다.
애도문에서 안민학은, 곽씨부인이 편모슬하에서 자라다가 14세에 자기와 혼인하여 23세를 일기로 별세할 때까지 함께 생활하였던 일들을 회상하며 그 내용을 시간적인 순서에 따라 서술하고 있다.
특히, 이 부부는 빈한한 가정에서 생활을 해야 했기 때문에 어려움과 회한에 쌓인 일이 많았는지, 서두부터 그러한 내용으로 시작되고 있다. 어린 나이에 시집와서 편모 봉양과 병든 남편 받들기에 힘겨웠던 데다가 무리를 하여 유산(流産)한 끝에 중병을 얻게 되어 끝내 죽게 되었으니, 남편이 되어 그 의무를 다하지 못한 것을 참회한다 하였다. 이어서 어려웠던 생활 중에서도 금실 좋게 지냈던 일을 생각하면 차라리 자신도 따라 죽어서 넋이라도 함께 다니고 싶다는 애절한 심중을 토로하고 있다.
이 애도문은 조선 선조대 부부간의 의식구조와 생활습속의 일면을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조선조 선비들이 남긴 한글로 된 문장은 시가문이나 내실의 여인들에게 보낸 간단한 서간문들 뿐인데, 이 애도문은 당시의 생활용어로 쉽게 풀어서 쓴 구어체의 산문문장이며 장문이다.
그래서 아직까지 국문학계에서 보지 못했던 선조 당시의 문체의 특성을 찾아볼 수가 있다. 특히, 이 애도문은 지은이의 친필유고이기 때문에 작품을 원작의 상태로 평가할 수 있을 뿐 아니라, 표기법, 음운의 변천, 고어법 등의 연구에도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