양재집 ()

유교
문헌
개항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생존한 학자, 권순명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76년에 간행한 시문집.
정의
개항기부터 해방 이후까지 생존한 학자, 권순명의 시가와 산문을 엮어 1976년에 간행한 시문집.
편찬/발간 경위

1976년 권순명의 아들 권용화(權容和) 및 문인 등이 편집·간행하였다. 서·발은 없다.

서지적 사항

22권 11책. 신연활자본. 국립중앙도서관·고려대학교 도서관·계명대학교 도서관 등에 있다.

내용

권1∼7에 서(書) 644편, 권8∼10에 잡저 63편, 서(序) 95편, 기(記) 62편, 권11에 제발(題跋) 48편, 명(銘) 45편, 잠(箴) 2편, 찬(贊) 19편, 자사(字辭) 12편, 혼서 3편, 고축(告祝) 27편, 권12·13에 제문 61편, 상량문 9편, 비(碑) 83편, 묘지명 10편, 권14∼18에 묘갈명 286편, 권19에 묘표 82편, 권20에 행장 34편, 유사 1편, 전(傳) 8편, 권21에 부(賦) 3편, 시 481수, 권22에 추록(追錄)으로 서(書) 12편, 서(序) 4편, 기 8편, 제발 2편, 명(銘)·묘지명·묘갈명·행장·전(傳) 각 1편 등이 수록되어 있다.

서(書) 가운데 「상간재선생서(上艮齋先生書)」에서는 존화양이(尊華壤夷)를 비롯해 성리(性理)·명덕(明德)·인심도심(人心道心)·달도달덕(達道達德)·이통기국(理通氣局)·담일청허지기(湛一淸虛之氣)·기질성(氣質性)·예설(禮說) 등에 대해 질의하였다. 「상확재김장(上確齋金丈)」·「상단운민장(上丹雲閔丈)」·「상김동강(上金東江)」 등에서는 처세술을, 「상지산김장서(上志山金丈書)」에서는 절의 등에 대해 논하였다. 「상석농오장서(上石農吳丈書)」를 비롯하여 친구·문인 등과 주고받은 600여 통의 편지도 대부분 경의·성리설·예설·처세술·의리 등 경학·세교에 관한 문제에 대해 문답·논란한 것들이다.

잡저 가운데 주자의 글 중 의문점에 대해 문답한 「주자대전의목문답(朱子大全疑目問答)」과, 이의조(李宜朝)가 쓴 『가례증해』 중 의심나는 부분을 설명한 「가례증해기의(家禮增解記疑)」 등은 참고자료가 된다. 「명덕문답(明德問答)」·「첨배학로명덕설(籤裵學魯明德說)」 등에서는 명덕은 본심이라는 선유설을 긍정하고 인용해, 명덕은 사람에게만 부여되고 동식물에게는 부여되지 않는 것이기 때문에 『대학장구(大學章句)』에서도 특별히 명덕은 사람만이 하늘에게서 얻은 것으로 주석했다고 논하였다.

「독임천오씨태극무동정설(讀臨川吳氏太極無動靜說)」에서는 이(理)가 스스로 동정(動靜)하지는 못하지만 동정하는 원리는 있기 때문에, 주희(朱熹)가 그 원리를 추구해 이(理)가 동정한다고 말했다고 하였다. 그리고 태극은 스스로 동정하지 않고 음양이 스스로 동정하기 때문에, 주자가 태극은 동정하지 않는다고 말했다고 설명하였다. 이어 이이(李珥)가 음양동정(陰陽動靜)은 그 기(氣)의 자연이라고 말한 것은 바로 주자의 태극은 동정하지 않는다는 말이나 오씨(吳氏)의 태극은 동정이 없다는 말 등과 일맥상통한 것이라고 논하였다.

「정석천도심불중절자위악설(鄭石泉道心不中節者爲惡說)」에서는 도심에 대해 해설하였다. 「독영유척명기설(讀嶺儒斥明氣說)」에서는 심(心)은 바로 기(氣)의 정명(精明)한 것이지만 간혹 혼란할 때가 없지 않으므로 그 심기(心氣)를 검속해 밝게 해야 한다고 설명하였다. 그리고 이이의 이른바 “성성(惺惺)하여 혼매함이 없어야 한다.”는 말이 바로 그 명기(明氣)의 뜻이라고 하였다.

「삼연집일록의의(三淵集日錄疑義)」·「농암논선자청기지발의의(農巖論善者淸氣之發疑義)」 등은 사단(四端)이 어떤 기(氣)에서 발로되었는지를 연구하는데 좋은 자료다. 「신명문답(神明問答)」·「정자의질의(定字義質疑)」·「미발설(未發說)」·「횡거기질성해(橫渠氣質性解)」·「허령지각의의(虛靈知覺疑義)」 등은 신명(神明)·태극도설·미발(未發)·기질성 등을 연구하는 데 참고가 된다. 그밖에 심즉리(心卽理)를 주장한 모든 학설에 대해 조목조목 변론한 글이 있다.

집필자
이재수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