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시경(周時經)·신흥우(申興雨) 등과 함께 1896년 서재필(徐載弼)이 조직한 협성회(協成會)의 주요구성원으로 활약하였다. 이어 독립협회가 결성되자 이에 가입, 1898년 2월 제의(提議)로서 사법위원서기를 겸하면서 애국계몽운동에 적극 투신하였다.
그 뒤 배재학당 교원으로 재직중 1898년 11월 독립협회에 대한 대대적인 탄압이 가해지자, 이승만(李承晩) 등과 함께 학생 등 군중을 이끌고 경무청으로 몰려가 만민공동회를 개최, 독립협회 탄압을 성토하였다.
또한, 정부의 사주를 받은 보부상들이 만민공동회 개최를 방해하는 공작을 벌이자, 이러한 음모를 폭로하고 그 처사를 강력히 규탄하였다. 그 뒤 협성회 회장을 맡으면서 그 기관지로 일반대중과 부녀자들을 대상으로 하는 순한글 신문 『매일신문』을 간행하는 등의 언론활동을 벌이기도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