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남원(南原). 자는 학기(學器), 호는 진우재(眞愚齋). 동지중추부사 양관(梁灌)의 고손으로, 증조는 첨정 양응곤(梁應鵾)이고, 할아버지는 이조참판 양희(梁喜)이며, 아버지는 양홍주(梁弘澍)이다.
용모가 준수하고 풍채가 늠름하였다. 어려서부터 문장력이 뛰어났으며 성혼(成渾)에게 수학하였다.
1592년에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아버지 양홍주는 의병을 일으켜 때마침 경상도에서 의병대장으로 활약하고 있는 정인홍(鄭仁弘)에게 합세하려고 하였다. 그 때 18살의 어린 나이로 아버지를 설득하여 김성일(金誠一)의 휘하로 달려가서 크게 용맹을 떨치다가, 다시 가재를 정리하여 많은 화살을 준비한 뒤 해로(海路)로 의주의 행재소(行在所: 임금이 거동하며 임시로 쓰는 처소)에 이르러 헌납하였다.
그 때 마침 명장 이여송(李如松)이 군사 5만 명을 거느리고 압록강을 건너오니, 행재소의 문무백관들이 모두 나아가 환영하였다. 이 때 많은 문무백관들 앞에서 양황이 이여송을 환영하는 시를 낭독하자, 그 유려한 문장력에 모두 놀랐다. 난이 끝나자 다시 파산(坡山)에 있는 정사(精舍)로 돌아가 수학하다가 그곳에서 죽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