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제주(濟州). 자는 원숙(元淑), 호는 정재(正齋). 아버지는 양재덕(梁在德)이고, 어머니는 죽산안씨(竹山安氏) 안평환(安平煥)의 딸이며, 기우만(奇宇萬)의 문인이다.
1903년 향시에 합격하고 제시(製試)에서 장원하였다.
1905년 을사늑약(乙巳勒約)이 체결되자 벼슬을 단념하고 학문에 열중하였다. 1930년『송사집(松沙集)』 간행에 참여하였으며, 1934년 기우만의 영당(影堂)을 세웠는데 당시 왜정(倭政)이 가혹하여 모현장충(慕賢奬忠)에 대한 일은 일체 저지당하였다.
양회갑은 후학들에게 이단(異端)이 횡행하는 오늘날 동심협력(同心協力)하여 의리(義理)를 천명하고 강상(綱常)을 부식(扶植: 도와서 서게 함)하여 일선(一線)의 양맥(陽脉)을 계승하는 것이 급선무라 말하고 격치(格致) 성경(誠敬) 공부에 힘쓰게 하였다. 1941년 양팽손(梁彭孫)의 문집 중간에 참여하였다. 저서로는 『정재집(正齋集)』 16권 7책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