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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923년에, 방정환이 동요 · 동화의 창작품을 수록한 아동 잡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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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1923년에, 방정환이 동요 · 동화의 창작품을 수록한 아동 잡지.
내용

아동문학가 방정환(方定煥)을 중심으로 개벽사(開闢社)에서 발행하였다. 1923년 3월에 창간되어 1934년 7월에 통권 122호로 폐간되었다. 창간 당시에는 대체로 보름에 1회꼴로 발행되다가 곧 월간체재로 정착, 폐간 때까지 계속되었다.

그러나 여러 가지 이유로 매년 1회 정도 결간되었다. 창간 당시는 타블로이드판 12면으로 된 신문형식이었으나 8호부터는 A5판 또는 B6판의 책자형식으로 바뀌었다.

일반기사는 국한문을 혼용하거나 한자를 괄호처리하였으며, 문예물은 한글을 전용하였다. 호를 거듭할수록 삽화나 사진을 늘려서 지면을 다양하게 해나갔다.

지면의 부피는 12면에서 90면까지 증감의 폭이 컸으나 월평균 70면 정도였다. 창간 초기에는 천도교소년회에서 ‘새싹회’ 회원들이 주관하였는데, 방정환은 그 중심인물이었다.

따라서, ≪어린이≫지는 방정환의 사상과 경영에 따라 운영되었고, 그의 유고시나 사후에는 김옥빈(金玉斌)·이정호(李定鎬)·김기전(金起田)·고한승(高漢承)·마해송(馬海松)·박달성(朴達成)·손진태(孫晋泰)·윤석중(尹石重) 등이 편집에 참여하였다.

이 잡지는 동요·동화·동극 등의 구분을 확실히 하여 장르의식을 확립하는 한편, 최초로 동요·동화의 창작품을 게재하였다는 점에서 한국 아동문학의 본격적인 출발선을 그었다.

마해송의 <어머니의 선물>·<바위나리와 아기별> 등 창작동화를 게재하는 한편, 좋은 창작 동요를 다수 게재하여 1925년을 전후한 동요 황금시대로 이끌어 갔다.

방정환의 <형제별>, 윤극영(尹克榮)의 <반달>, 유지영(柳志永)의 <고드름>, 서덕출(徐德出)의 <봄편지>, 이원수(李元壽)의 <고향의 봄>, 윤석중의 <오뚜기> 등의 명작동요를 게재하여 작곡하게 함으로써 국민 개창운동의 절정을 이루었다.

또한, 이 잡지는 우수한 아동문학가를 배출하는 데 크게 이바지하였다. 마해송·정인섭(鄭寅燮)·한정동(韓晶東)·윤석중·이원수·박목월(朴木月)·이구조(李龜祚) 등이 모두 이 잡지를 무대로 활동하였고 육성되었다. ≪어린이≫지는 광복 후에 과거의 법통을 계승하여 복간된 바 있다. 1948년 5월 복간 123호에서 1949년 12월 통권 137호까지 발행하고 폐간되었다.

편집인은 과거 방정환의 ≪어린이≫지를 도왔던 고한승(32호 이후는 李應辰)이었고, 발행소도 광복 후 부활된 개벽사였으며, 편집체재도 과거 ≪어린이≫지를 답습하였다. 그러나 지나친 복고풍은 새로운 독자들의 호응을 받지 못하여 단명에 그치고 말았다.

참고문헌

『한국현대아동문학사』(리재철, 일지사, 1978)
「아동잡지(兒童雜誌) ‘어린이’연구」(이재철, 『한국아동문학연구』, 개문사, 198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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