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승(禪僧). 해동사무외(海東四無畏) 중 1인이다. 경주김씨(慶州金氏). 충청남도 남포(藍浦 : 지금의 충청남도 보령시)출신. 9세 때 무량수사(無量壽寺)로 출가하여 주종(住宗)의 제자가 되었으며, 『화엄경』을 공부한 뒤 19세에 구족계(具足戒)를 받았다.
그러나 교종(敎宗)의 가르침이 진실을 분명하게 표현한 것이 아님을 느끼고 참선(參禪)에 뜻을 두었다. 그뒤 숭엄산 성주사(聖住寺)에서 선법(禪法)을 현양하고 있는 무염(無染)을 찾아가서 수년 동안 수행하였다.
887년(진성여왕 1)에 무염이 입적하자 남쪽으로 내려가 영각산(靈覺山)에 있는 심광(深光)의 밑에서 수년 동안 수행하다가 중국으로 건너가서 운거(雲居)의 지도를 받았다. 수년동안 정진한 끝에 오도하여 운거의 법맥을 전해받고 909년(효공왕 13)에 귀국하였다.
그러나 전란이 심하여 월악(月嶽)과 미봉산(彌峯山)으로 피하였다가 소백산에 은거하였다. 그때 그의 덕을 흠모한 고려의 지기주제군사(知基州諸軍事) 강훤(康萱)이 태조에게 상문(上聞)하자, 태조는 지평(砥平 : 지금의 경기도 양평군) 보리사(菩提寺)의 주지로 임명하였다.
그뒤 후학의 지도에 전념하다가 입적하였다. 태조는 대경대사(大鏡大師)라는 시호와 함께 현기(玄機)라는 탑호를 내렸다. 비는 양평군 용문면 보리사터에 있었는데, 국립중앙박물관으로 이전되었다. 제자로는 융천(融闡)·흔정(欣政) 등 500여명이 있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