여천 평려동 고인돌 ( 고인돌)

선사문화
유적
전라남도 여수시 산본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축조된 21기의 고인돌군. 지석묘군.
정의
전라남도 여수시 산본마을에 있는 청동기시대 축조된 21기의 고인돌군. 지석묘군.
개설

산본 (주)제일모직 여천공장부지 내에 있는 고인돌이다. 평여동은 광양만 남단으로 영취산(靈鷲山, 510m) 서쪽 기슭에 위치하고 있다. 고인돌들은 산기슭 아래의 완만한 경사면 끝부분에 산줄기방향으로 3곳에 9기, 9기, 3기 등 21기가 분포되어 있었다.

현재는 제일모직 여천공장 안이며, 흥국사역 동쪽에 해당한다. 가지구 고인돌은 거대한 상석이 있는 제1호만 지상에 노출되어 있었고 나머지는 묻혀 있었다. 발굴과정에서 8기의 상석이 더 확인되었다. 이 중 3기에서만 석실이 확인되었고, 5기는 이동된 것으로 판명되었다.

내용

여기서 조사된 석실은 모두 14기이며 제1호를 중심으로 집중 분포되어 있었다. 제1호 고인돌은 6개의 지석이 타원형으로 적석 안쪽에 배치되어 있고 적석 가장자리에는 장대석을 이용해 방형으로 구획하였다. 상석과 유구가 있는 것이 4기, 뚜껑돌이 있는 것이 9기이며, 석실 형식은 제2호만 위석형이고 나머지는 석곽형이다.

출토유물은 소옥 2점(제12호), 유구석부 3점, 석촉 1점, 민무늬토기편 등이 있다. 나지구 고이돌은 상석 9기 중 8기를 조사했으며 석실은 4기에서만 나타났다. 거대한 상석을 가진 제1호는 석실 흔적이 없었다. 제2·3호는 간단한 석실이며, 제4호는 할석과 장대석을 이용해 쌓은 석곽형 석실이다.

유물은 제2호 서쪽 바닥에서 변형 비파형동검 1점, 제4호 바닥에서 소형 관옥 2점이 출토되었다. 다지구 고인돌은 상석이 있는 3기와 상석이 없는 5기 등 모두 8기가 조사되었다. 제1호는 거대한 상석 아래에 지석 5개가 고이고 있으나 석실이 발견되지 않았다. 나머지는 모두 석곽형 석실이다.

석곽형 석실에는 뚜껑돌을 덮은 것이 보편적이다. 바닥도 전면에 잔자갈을 깐 것(제4, 7, 8호), 전면에 판석 5매를 깐 것(제2호), 편평석 1개를 놓은 것(제3, 6호) 등이다. 적석을 한 것 중 제3호와 제6호는 판석편을 타원형상으로 세워 구획한 것이 특이하다.

출토유물은 청동기와 석기류 등은 없고 옥류와 무문토기편 뿐이다. 옥은 곡옥 2점, 관옥 135점, 소옥 211점, 환옥 2점 등 총 349점이다. 특히, 제2호에서는 곡옥 2점, 관옥 29점, 소옥 209점이 일괄로 출토되었다. 제3호에서는 관옥 105점, 환옥 2점이, 제5호에서는 소옥 2점, 제8호에서는 관옥 1점이 발견되었다.

의의와 평가

평여동 고인돌은 적석시설에서 독특한 형식을 보이며, 3지역 모두 거대한 남방식 고인돌들이 1개씩 있어 이들이 중심적이고 표시적인 것이 특징이다. 고인돌의 축조연대는 소형 관옥, 유구석부 등으로 보아 기원전 6∼4세기경으로 추정된다. 옥류들이 여타 고인돌들과는 달리, 부장품으로 다량 사용되고 있는 점은 고인돌뿐만 아니라 장신구 연구에 중요한 자료이다.

참고문헌

『여천 평여동 산본 지석묘』(이영문·최인선·정기진, 전남대학교박물관·여천시, 1993)
집필자
이영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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