이 법회는 염불공덕에 의하여 살아서는 편안한 생활을 하고 죽어서는 극락에 왕생(往生)할 것을 원하여 행하는 법회로써 그 유래는 '염불결사'에서 찾을 수 있다. 우리나라 최초의 염불결사는 8세기 중엽 경덕왕 때의 발징(發徵)에 의하여 개설되었는데, 고성군 원각사(圓覺寺)에서 신자 1,000여 명을 모아 결사, 노력(努力)과 정수(精修)의 두 무리로 나뉘어 1만 일을 기약하고 수행하였다. 이 염불결사를 미타만일회(彌陀萬日會)라고도 한다. 우리나라 염불회에서 행하는 염불의 형식은 구칭염불(口稱念佛)과 관상염불(觀想念佛)이 있고, 시한을 정하여 행하는 백일염불회·천일염불회·만일염불회 등이 있다.
만일염불회는 신라시대부터 있었고 조선 후기에는 건봉사(乾鳳寺)에서 행하였다. 이 경우 염불수행의 뜻을 같이하는 사람들이 계(契)를 조직하여 행한다. 구칭염불은 입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소리 내어 염불하는 것을 말하고, 관상염불은 아미타불이나 극락정토의 모습을 생각하는 것을 말한다.
신라시대부터 고려시대까지는 두 가지 염불이 동시에 성행하였고, 조선시대까지 그와 같은 경향이 있었으나 현재에는 구칭염불만 성행하고 있다. 구칭염불에는 혼자서 아니면 여러 사람이 ‘나무아미타불’을 계속 소리 내어 부르는 일반적인 구칭염불과 도사(導師)의 선창에 이어 대중의 후창으로 염불하는 장엄염불(莊嚴念佛)이 있다.
장엄염불은 도사가 아미타불과 극락정토의 여러 모습을 선창하면 대중이 다같이 후창으로 ‘나무아미타불’을 염불하는 형식을 취한다. 장엄염불의 형식은 중국에 있었던 신라사원인 적산원(赤山院)에서 이미 행해지고 있었다.
구칭염불 때에는 북이나 광쇠 등을 반주악기로 사용하며, 의식무(儀式舞)를 수반하기도 하고, 나아가서는 예능적 민속행사를 낳기까지 하였다. 「산염불(山念佛)」·「회심곡(回心曲)」 등은 그 소산의 하나이다.
1950년대까지 염불회는 염불당(念佛堂)을 중심으로 한 수행법으로 크게 성행하고 있었으나, 오늘날에는 수행법으로서의 염불회가 거의 사라지고 영혼천도의식 때 행하는 염불회만 남아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