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94년 충청북도 민속자료로 지정되었다. 1습(襲). 1909년(순종 3)에 제작된 것으로, 재료는 목재와 천이고, 대차와 소차 이중구조이다.
왕가의 상여로 고종의 6촌 형인 이용강 대감이 충정북도 영동군 황간면 금계리로 유배 온 뒤 1870년에 세상을 떠나자, 고종이 그를 애도해 하사한 것으로 알려 졌으나, 실제는 세종의 열셋째 아들인 밀성군(密城君)의 15세손 이용직(李容直, 1824∼1909)의 것으로 밝혀졌다. 한 동안 주민들이 고종의 6촌 형인 이용강 대감의 것이라고 주장하게 된 것은 이용직이 용강 현감을 지낸 것에서 유래된 것으로 보인다.
이용직은 철종 때 문과에 급제하고 용강현감을 거쳐 여주목사, 영남어사, 경상도감사에 이어 공조판서가 되었다. 홍문관·예문관 제학을 지냈고,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갔다. 묘소는 황간면 수석리 후록에 있다.
이 상여의 특징은 보통 상여와는 달리 대차와 소차 등 2중 구조로 대차 32명, 소차 24명이 메도록 되어 있는데, 규모가 크고 외부장식이 섬세하고 다채롭다. 대차는 총길이 10m, 둘레 47㎝로 만들어져 있다.
또, 교차판(칠성판)이 있어 관을 칠성판(가로 123㎝, 고리 8개)에 고정시킬 수 있으며, 장식은 용머리가 앞뒤로 1개씩 2개씩 4개, 봉(鳳: 수컷)이 앞뒤로 2개씩 4개, 황(凰: 암컷) 앞뒤로 1개씩 2개, 동자상이 앞뒤좌우에 6개씩 12개 등으로 정교하게 장식되어 있고 연꽃 등 단청과 풍경이 섬세하게 그려져 있다.
그 외에 매듭과 바닥을 아름답게 장식하고 단청이 섬세하여 충청남도 예산군 덕산면 남은들 상여와 강원도 춘천시 청풍부원군 상여와 비교하여 크기와 모양이 비슷하다.
혼백을 모시는 요여(腰輿)는 4명이 들도록 되어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