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01년 4월 17일 보물로 지정되었다. 1344년(충목왕 원년)에 세워진 매향기록으로, 7부 능선 속칭 ‘글자바위’로 불리는 바위의 한쪽 작은 틈새에 새겨져 있다.
엄길리 일대는 영암만의 만입부(현재는 간척지)로서 은적산 계곡에서 흐르는 물이 해수(海水)와 마주치는 지점이다. 이 영암만을 사이에 두고 구림천과 마주보는 천혜의 양지로서, 다른 지역의 매향지들과 유사한 전설을 지니고 있다.
이 글자바위에는 옛날 보물(금)을 묻어 놓고 그 장소를 바위에 적어 놓았으나 비기(秘記)여서 해독할 수가 없고, 또 글을 해독하지 못하는 사람이 보물을 캐면 액살이 끼게 되어 화를 당하게 된다는 내용이다. 실제 ‘왕(王)바위’ 또는 ‘금바위’(金바위 혹은 禁바위)라 불리는 바위가 산 밑에 있어 그 밑을 파려 했던 사람이 있었는데 마침 천둥, 벼락이 내려 겁을 먹고 중단했다는 일화도 있다.
영암매향기록은 자연 암벽의 좁은 한쪽 벽에 음각하여 은폐되고 풍우를 피할 수 있는 위치여서 비문도 비교적 잘 판독된다. 자연 암벽을 특별히 정제하여 비면을 만들지 않았기 때문에 상 · 하 행렬이 정연하지는 않으나, 매향의 주도자 · 연대 · 위치 · 매향집단 · 발원자가 모두 밝혀진다.
간추리면 고을미(古乙未) 북촌○을포(北村○乙浦)에 미타계(彌陀契)에서 용화회(龍華會)에 공양할 침향을 묻었다는 내용이다. 발원자로는 천을미분(千乙未分) · 김대○(金大○) · 김금물(金今勿) · 신일소(申日召) · 김동화(金冬火) · 김양병(金洋並)의 이름이 보이고, 화주(化主) · 각생(刻生)으로는 급암(及岩) · 진암(珍岩) · 대○(大○) 등의 승려 이름이 보인다.
비면만의 규격은 가로 103㎝, 세로 90㎝이고, 자경(字徑)은 대소의 차가 커 6∼3㎝, 총 18행 129자(판독불명 5자)이다.
이 매향비문은 고려말 조선초의 매향양식과 지방의 민간 신앙을 살피는 중요한 자료인 동시에 향촌공동체 조직의 실상을 반영하는 귀중한 금석문이다. 특히, 연대를 불기(佛紀)로 쓴 점이나, 미타계(彌陀契)라는 신앙결사명이 보이는 점, 당시 이두문체와 지방관직명이 나타나는 것 등은 다른 예들과는 특이하여 주목된다.
이 암각은 전남지방의 매향자료 중 가장 앞선 시대의 것이며, 전국에 산포된 8개의 매향비 중에서는 세 번째가 된다. 그리고 매향의식에는 ‘미타계’라는 불교결사와 함께 관원들이 연결된 인상이어서, 순수 신앙결사 내지 민중신앙으로의 전이과정을 추적하는데 귀중한 자료가 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