호는 범란(梵鸞). 성은 이씨(李氏). 충청북도 청주 출신. 비교적 부유한 가정에서 태어나 5세 때부터 집에서 한학을 배웠으며, 10세에 이미 사서(四書)를 마쳐 고문(古文)에 통달하였다.
11세에 보통학교에 입학하였고, 18세에 농업학교를 졸업하였으며, 그뒤에도 서울에 가서 공부를 계속하고자 하였으나 부양가족 때문에 청주 도청에 취직하였다.
그때 공무로 자주 법주사(法住寺)에 출입하는 동안 당대의 대강백(大講伯)인 백초월(白初月)·김포광(金包光) 등과 접촉하게 되었고, 이것이 인연이 되어 19세에 법주사로 출가하여 남파의 제자가 되었으며, 호암(護菴)의 법맥(法脈)을 계승하였다.
그뒤 『능엄경(楞嚴經)』·『반야경』·『원각경(圓覺經)』·『대승기신론(大乘起信論)』 등의 교리를 섭렵하여 특출한 경지에 이르렀고, 다른 한편으로 계율을 엄하게 지켰으며, 관음주력(觀音呪力)을 하는 등 철저한 신행(信行)을 길렀다.
그뒤 천은사(泉隱寺)의 공비 유학생으로 발탁되어, 1920년 9월에 니혼대학(日本大學) 종교과에 입학하여 1923년에 졸업하였다. 이어 동경제국대학의 인도철학과에 입학하여 범어(梵語)와 영어 등을 전공하면서 인도유학을 준비하였다.
그리고 1924년부터 동경유학생들의 기관지인 『금강저(金剛杵)』를 편찬하는 등 동경유학생들 사이에서 크게 활약하였다. 1925년 9월에 인도유학의 길에 올랐으며, 1927년 10월 12일에 사망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