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헌상의 기록으로만 전할 뿐 실물작품은 현존하지 않는다. 1124년(인종 2) 추밀사 이자덕(李資德)을 따라 수행화원으로 북송에 갔다가 휘종(徽宗)의 요청에 의하여 그렸던 것이다. 서화에 뛰어났던 휘종이 이 그림을 보고 크게 상찬하였던 점으로 미루어 그 수준이 매우 높았음을 알 수 있다.
그리고 그 화풍은 화원들의 원체화풍(院體畫風) 수집과 진흥에 각별한 관심을 가지고 있던 휘종의 궁정취향과 연관지어 볼 때 사실적인 청록산수화풍(靑綠山水畫風)이었을 것으로 짐작된다. 「천수사남문도(天壽寺南門圖)」와 함께 우리나라 실경산수화의 태동과 발전과정을 알려주는 중요한 자료가 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