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명 오응부(吳應富). 1199년(신종 2) 명주(溟州: 지금의 강원도 강릉)·동경(東京: 지금의 경상북도 경주) 등지에서 반란이 일어나자, 낭장(郎將)으로서 명주에 파견되어 이를 진압하였다. 그 뒤 승진을 거듭하여 상장군(上將軍)에 올랐으며, 1216년(고종 3)에 거란유종(契丹遺種)의 침입을 막기 위하여 중군(中軍)·우군(右軍)·후군(後軍)의 3군을 구성할 때 우군병마사(右軍兵馬使)가 되었다.
다음 해에 고려군이 태조탄(太祖灘: 지금의 평안북도 박천)에서 크게 패하고 거란군이 금교역(金郊驛: 지금의 황해도 서흥)에까지 이르자 다시 5군을 편성하였는데, 이때 중군병마사(中軍兵馬使)가 되어 5군을 지휘하였다. 그러나 거란군이 적성(積城: 지금의 경기도 파주)에 있는 것으로 잘못 판단하고 이곳을 공격하였다가 동주(東州: 지금의 강원도 철원)를 빼앗겼으므로, 최충헌(崔忠獻)에 의하여 파직되었다. 그 뒤 참지정사(參知政事)에까지 올랐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