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흥 오이도 유적 ( )

선사문화
유적
문화재
신석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 원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 내 각지에 조성된 패총과 생활유적.
이칭
이칭
오이도조개더미, 오이도패총
유적
건립 시기
신석기시대, 초기 철기시대, 원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
소재지
경기도 시흥시
국가지정문화재
지정기관
문화재청
종목
사적(2002년 04월 01일 지정)
소재지
경기도 시흥시 서해안로 113-27 (정왕동)
내용 요약

시흥오이도유적은 신석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 원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 내 각지에 조성된 패총과 생활유적이다. 신석기시대 조개더미층이 오이도 내 가장 많은 지점에 분포하며 신석기층 상부에서 초기 철기시대, 원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의 조개껍데기층과 유구도 확인되었다.

정의
신석기시대부터 초기 철기시대, 원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에 이르기까지 경기도 시흥시 오이도 내 각지에 조성된 패총과 생활유적.
발굴경위 및 결과

경기도 시흥시에 자리한 오이도는 현재는 완전히 육지화되었으나 본래 인천만과 군자만 사이의 작은 섬이다. 섬 북편에서 안말 조개더미의 존재가 보고된 1960년 이래 오이도 내 총 6개 지점에서 12기의 조개더미 유적이 확인되었다.

조개더미는 대체로 만(灣)이 형성된 포구 주위에 입지하며, 크게 북부 조개더미군(안말, 소래벌, 작은소라벌, 뒷살막조개더미), 남서부 조개더미군(가운데살막조개더미), 남부 조개더미군(신포동조개더미)으로 구분된다.

1980년대 이래의 본격적인 발굴 조사를 통하여 오이도가 신석기시대를 시작으로 초기 철기시대, 원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까지 장기간에 걸쳐 반복적으로 점유되었음이 확인되었다.

형태와 특징

오이도 내 가장 많은 지점에서 조사된 신석기시대 조개더미는 90~99.9%가 굴인 ‘렌즈형’의 조개껍데기 덩어리가 겹겹이 쌓여 하나의 조개껍데기층을 이룬 형태이다. 신석기시대 주거지, 화덕자리도 조사되었는데, 석기, 골각기 등 도구상은 빈약한 편이다.

이상을 고려할 때 신석기시대 오이도에서는 굴에 대한 집중적 채집이 단속적으로 반복되었다고 추정된다. 주1에 대한 상대편년 및 주2 결과로 미루어 조성 시기는 대체로 3500cal BC를 전후한다.

신석기시대층 상부에서 초기 철기시대, 원삼국시대, 통일신라시대의 조개껍데기층과 유구가 확인되거나, 위치를 달리하여 조선시대의 주3가 조사되기도 하였다.

의의 및 평가

시흥오이도유적은 신석기시대부터 통일신라시대 이후의 시대까지 살필 수 있는 우리나라 서해안 지역의 대표적인 유적이다. 특히 통일신라시대 주거지는 오이도 지역에서 처음 확인된 것으로 서해안 지역 주민의 주거 형식 및 온돌 발전 과정을 이해하는 데 학술적인 가치가 매우 크다.

참고문헌

단행본

『烏耳島貝塚』(서울대학교박물관, 1988)
『오이도 가운데살막패총』(서울대학교박물관, 2001)
『오이도 뒷살막패총』(서울대학교박물관, 2002)
『시흥 오이도 유적』(서울대학교박물관, 2013)

논문

尹武炳, 「烏耳島貝塚」(『考古美術』 1-4, 1960)

기타 자료

「시화지구 개발 군 대체시설공사 문화재 발굴조사 보고서」(서울대학교박물관, 2005)
주석
주1

표면에 빗살 같은 줄이 새겨지거나 그어져 있는 신석기 시대의 토기. 붉은 찰흙을 이용하여 표면에 빗살 같은 평행선이나 물결 모양을 이룬 점선 따위의 기하학적 무늬를 넣어 얄팍하게 만들었다. 핀란드, 러시아, 몽골, 한국 등지에 널리 분포한다.    우리말샘

주2

14도의 방사선 붕괴에 의하여 줄어든 양의 비율로 연대를 측정하는 방법.    우리말샘

주3

봉화를 올리던 둑. 전국에 걸쳐 여러 개가 있었는데, 특히 남산은 각 지방의 경보(警報)를 중앙에 전달하는 국방상 중대한 임무를 전담하는 곳으로 다른 곳과 달리 다섯 개나 있었다.    우리말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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