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신증동국여지승람』에 의하면, 북쪽 오랑캐의 잦은 침략을 막기 위하여 삼국시대에 절을 창건하고 탑을 세워서 전란을 면할 것을 기원하였다고 하며, 고려 때 최언위(崔彦撝)가 지은 법경대사비가 이곳에 있다고 하였으나 법경대사비는 인근 정토사(淨土寺)에 있으므로 오기(誤記)인 듯하다.
이 절은 조선 초기까지 건재하였으며, 조선 중기에 폐허화된 것으로 추정된다. 1980년 7월에는 관동대학교 학술조사단이 발굴 조사하여 70㎝ 가량의 축대와 가로 80㎝, 세로 60㎝의 받침돌 두개, 비천상이 조각된 기와 5매를 찾아냈다. 이 절은 황룡사·사천왕사 등과 함께 신라의 호국 사찰로 추정되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