동서고금을 막론하고 뱃놀이를 즐긴 임금은 많은데, 특히 우리나라에서는 고려의 여러 왕들이 선유(船遊)를 잘 하였다. 고려의 경종은 일찍이 동지(東池)에 나가서 용선을 타고 친히 진사시험을 주도한 일이 있고, 선종과 숙종은 서경(西京: 지금의 평양)의 대동강에서 용선을 타고 연회를 베풀었으며, 의종은 개경(開京)과 서경에서 용선을 띄워 놓고 뱃놀이하기를 즐기다가 무신의 난을 당하여 왕위에서 쫓겨났다.
고려 말기에도 우왕은 동강(東江)에서 배를 타고 음악을 연주하며 유숙하여 기녀들에게까지 말 한 필씩을 내주며 호유한 일이 있다. 조선시대에 들어서도 광해군이 청나라와의 관계가 악화되자, 유사시에 강화로 피난할 것을 생각하여 자신이 타고 갈 용주(龍舟) 3척을 만들게 한 일이 있다.
이렇게 용선에 대한 기록은 풍부한데 그 가운데에는 처음부터 임금이 타는 배로 특별히 건조된 것도 있었다. 1167년(의종 21) 7월에 만든 어선(御船)은 비단으로 꾸미는 데 3년이 걸렸다고 하며, 1385년(우왕 11) 7월에 만든 누선(樓船)은 극히 화사한 것으로서 특별히 이름을 봉천선(奉天船)이라 하였고, 광해군이 만든 용주는 선상에 방을 꾸며 사치하고 크며 화려하기 이를 데가 없어 신하들의 반대가 심하여 별로 이용되지 못하고 말았다.
용선 또는 용주는 본래 중국에서 시작된 것으로 민간에서는 단오절 등 명절에 여러 척을 하천이나 호수에 띄워 놓고 서로 경주를 하며 즐겼고, 한편 제왕장상(帝王將相)들은 그들의 위엄을 과시하기 위하여 찬란하고 거대한 배를 만들고 선수는 용의 머리, 선미는 용의 꼬리 모양으로 장식을 하였다.
고려와 조선시대의 여러 임금이 만들어 탄 용선은 특수한 선형을 갖춘 배가 아니고 다만 사치스럽게 만들어 임금이 탑승한 데서 용선으로 이름이 붙여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