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989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지정면적 4,168㎡. 이동면 중덕(中德)마을 뒷산에 위치해 있다. 퇴적구는 자연경사에 가운데가 움푹하고 양 옆이 봉우리를 이루고 있는 모습이다. 퇴적더미의 길이가 80m, 너비가 50m, 높이가 5∼6m에 달하는 대규모 가마터이다. 퇴적층에서 가마의 유구, 백자, 청자, 회청색도기편, 갑발(匣鉢), 갑발받침, 가마벽편들, 그리고 작업과 관계있는 건물지가 조사되었다.
가마는 퇴적구의 양쪽 사이에서 발견되었는데, 최하층의 벽돌가마는 길이 약 40m, 너비 1.8m로 7×15×32㎝에 달하는 장방형의 벽돌을 사용하였고, 그 위의 진흙가마는 길이 83m, 너비 1.2m로 진흙과 갑발을 사용하여 가마를 축조하였다.
출토 도기는 백자의 완(盌), 접시, 발(鉢), 항(缸), 대합(大盒), 반구병(盤口甁), 탁잔(托盞), 호(壺), 장고, 제기 등으로 햇무리굽 완과 접시가 대부분이며, 철화(鐵畵)백자 장고편, 그리고 청자접시와 청자완편(盌片), 질그릇항아리편 등이 발견되었다. 백자의 태토는 백색의 고운 것과 입자가 거친 것이 있으며, 담청을 머금은 백자유(白磁釉)에 내화토 받침을 받쳐 구워졌다.
가마의 제작 시기는 햇무리굽 백자완의 중심시기를 11세기로 볼 때, 선(先)햇무리굽완의 시기인 10세기 후반부터 11세기를 거쳐 후(後)햇무리굽완의 시기인 12세기 전반까지 계속되었다고 추정된다.
1984년 ·1987년 ·1988년의 3차에 걸쳐 호암미술관(현 삼성미술관 리움)에 의하여 발굴 · 조사된 이 가마터는 고려 초기 백자요지로서, 6m에 달하는 퇴적층과 벽돌가마, 진흙가마의 존재, 다양한 기형의 백자편 등으로 고려백자의 기원과 발전을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가마터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