우배선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가산을 처분하여 의병을 일으켰으며, 예빈시참봉, 군기시판관, 낙안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 의병장.
이칭
사성(師聖)
월곡(月谷)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569년(선조 2)
사망 연도
1621년(광해군 13)
본관
단양(丹陽)
주요 관직
금산군수|낙안군수(樂安郡守)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정의
조선 중기에, 임진왜란이 발발하자 가산을 처분하여 의병을 일으켰으며, 예빈시참봉, 군기시판관, 낙안군수 등을 역임한 문신 · 의병장.
개설

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사성(師聖), 호는 월곡(月谷). 할아버지는 현감 우봉(禹鳳)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집안살림을 도맡아 하다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재를 털어 의병을 모집하였다. 화원·달성·최항산(最項山)에서 왜군과 싸워 연전연승하여 위용을 떨쳤다.

이에 초토사(招討使) 김성일(金誠一)의 천거로 예빈시참봉에 기용되었다. 계속해서 용감히 싸워 군기시판관이 되었으며, 이어서 합천군수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였다. 우배선의 거처를 모르는 조정에서는 수소문 끝에 찾아, 1600년 우배선을 금산군수에 명하였다.

그러나 사간원에서 정사를 전적으로 하리(下吏)에게 맡겨 부역이 고르지 못하고 백성들의 유망사태를 빚는다 하여 파직시킬 것을 청하자 스스로 사직하였다. 1603년 다시 낙안군수(樂安郡守)를 지냈으며, 1604년에는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석문집(石門集)』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