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단양(丹陽). 자는 사성(師聖), 호는 월곡(月谷). 할아버지는 현감 우봉(禹鳳)이다.
일찍이 부모를 여의고 집안살림을 도맡아 하다가 1592년(선조 25)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가재를 털어 의병을 모집하였다. 화원·달성·최항산(最項山)에서 왜군과 싸워 연전연승하여 위용을 떨쳤다.
이에 초토사(招討使) 김성일(金誠一)의 천거로 예빈시참봉에 기용되었다. 계속해서 용감히 싸워 군기시판관이 되었으며, 이어서 합천군수에 임명되었으나 이듬해 관직을 버리고 귀향하였다. 우배선의 거처를 모르는 조정에서는 수소문 끝에 찾아, 1600년 우배선을 금산군수에 명하였다.
그러나 사간원에서 정사를 전적으로 하리(下吏)에게 맡겨 부역이 고르지 못하고 백성들의 유망사태를 빚는다 하여 파직시킬 것을 청하자 스스로 사직하였다. 1603년 다시 낙안군수(樂安郡守)를 지냈으며, 1604년에는 선무원종공신(宣武原從功臣)에 책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