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목천(木川)이다. 1196년(명종 26) 최충헌(崔忠獻)이 이의민(李義旼)을 제거한 직후에 대장군으로서 우승선에 임명되었다.
다음 해에도 궁궐의 이빈문(利賓門) 밖 서쪽 행랑의 기둥에 구멍이 팬 사건이 일어나자, 무신들은 동반(東班: 文班)이 서반(西班: 武班)을 저주하여 일으킨 일이라고 하여 분개하였으나 홀로 이들을 설득하여 진정시켰다.
1202년(신종 5) 승선으로 있으면서 총재(冢宰)이던 최선(崔詵)과 함께 예빈성(禮賓省)에 나아가 역관을 선발하였으며, 같은 해에 추밀원지주사(樞密院知奏事)가 되었다.
이후 승진을 거듭하여 재추의 반열에 오르고 추밀원사를 거쳐 참지정사(參知政事)에 이르렀다. 1210년(희종 6)에는 직장동정(直長同正) 원서(元諝)와 공모하여 최충헌을 살해하려 한다는 투서가 있었으나 곧 무고임이 밝혀져 무사하였다.
그러나 다음 해에 왕준명(王濬明)과 환관 등이 최충헌을 살해하려다 실패한 사건이 일어나자, 사전에 이를 알고 있었다는 혐의를 받고 유배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