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삼국사기(三國史記)』백제본기에 의하면 501년(무령왕 1)에 백제의 달솔(達率)로 있으면서 5,000명의 군사를 거느리고 고구려의 수곡성(水谷城)을 공격한 것으로 되어 있다.
한편, 『삼국사기(三國史記)』고구려본기에서는, 503년(문자왕 12)에 그가 고구려의 수곡성을 공격하였다고 기술되어 있다. 이 경우 그가 501년과 503년 두 차례에 걸쳐 수곡성을 공격하였다고 볼 수도 있고, 어느 한쪽의 연대가 잘못된 것으로 볼 수도 있지만, 후자의 가능성이 많다.
또, 수곡성을 지금의 황해도 신계에 비정할 경우, 당시 백제가 지금의 예성강 지역까지 공격하였다는 기록에 회의적인 견해도 있으나, 반면에 동성왕·무령왕대의 백제가 한강 유역의 상당부분을 회복한 것으로 보고 이를 인정하려는 견해도 있다. 한편, 고이왕의 동생으로 최초의 내신좌평에 임명된 우수(優壽), 내법좌평 우두 등 우(優)씨를 왕족인 우태-비류계(優台-沸流系)로 파악하는 견해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