운화(運化)란 본래 하늘과 땅의 운행과 기상의 변화 등 자연의 움직임과 변화를 총괄하여 지칭한 말로 천지의 운화, 음양오행의 운화 등으로 쓰이다가 기로써 자연현상을 설명하는 성리학적 세계관이 보편화됨에 따라 기의 유행 변화를 가리키는 말로 쓰이게 되었다.
최한기는 이러한 운화를 기의 근본적인 성질로 보아 활동운화(活動運化)가 바로 기의 성(性)이라 하고, 크고 작은 만물이 기의 활동으로 응하고 서로 화하여 만물운화를 이루는데 이를 통합하여 운화기(運化氣)라 한다고 하였다.
따라서 최한기의 기학(氣學)에서 운화기는 형질(形質)의 기(氣), 신기(神氣)와 더불어 기의 중요한 한 형태로 간주된다. 구체적으로는 형질의 기가 지구·달·태양·별 등 만물의 형체 있는 것들을 가리키고, 운화의 기는 비·햇볕·바람·구름·추위·더위·건조함·습함 등의 형체로서 파악할 수 없는 것들을 가리키기도 하지만, 형질의 기와 운화의 기가 별개의 존재로 구분된다고 보지는 않는다.
최한기는 운화기의 본성과 본능을 설명하면서 “물체가 있으면 반드시 그 물체의 본성과 능한 바가 있으니 작은 물체는 소성소능(小性小能)이 있고 큰 물체는 대성대능(大性大能)이 있다. 대저 기라고 하는 것은 견줄 곳이 없을 만큼 커서 이 기가 쌓이면 힘이 생기고 운화하면 신령스러운 작용이 생긴다. 그러니 바로 이러한 것이 기의 본성이요, 기의 능한 바이다.
단지 인간은 땅 위에서 굽어보고 우러러보아 관찰해 보면 하늘의 기와 땅의 기가 서로 어울릴 때 바다와 육지의 풍물이 달라지고 산야의 풍토가 다르게 되고, 만물 가운데 먼저 태어난 것은 죽어 없어지면서 그 종자를 간직하게 되고 뒤의 것은 나서 자란다. 이 또한 운화기의 본성이요, 능한 바이다. 운화의 기는 곧 형체 있는 신(神)이요 형체 있는 이(理)이다”라고 하고 있다.
이 말로 미루어 보면 운화기라는 기의 일종이 따로 있는 것이 아니라 기가 모여 개별자를 이루고 있음을 지적한 개념이 형질의 기인데 반해, 그 형체 있는혹은 없는기가 지니는 보편적 운행 법칙의 측면을 지적한 개념이 운화기라는 것을 알 수 있다. 따라서 운화기의 측면에서 보면 모든 기는 유행, 변화하는데 그 형체와 크기에 따라 유행의 범위와 작용을 달리하고 있을 뿐이다.
최한기는 유행의 범위와 작용의 종류, 보편성의 정도에 따라 운화를 대기운화(大氣運化)·통민운화(統民運化)·일신운화(一身運化)의 단계로 나눈다. 그리고 각 운화는 운화의 법칙 즉 이(理)에 따라 이루어지는데, 대기운화가 통민운화와 일신운화를 포괄하고 있는 근본적이고 보편적인 운화이므로 대기운화의 이를 아는 것이 기학의 근본이라고 생각하였다.
유행지리(流行之理, 物理) 즉 운화의 법칙 그 자체는 인간의 지각에 드러나는 것이 아니므로 알 수 없지만 인간은 형체 있는 기의 작용을 통해 어느 정도 추측할 수 있다. 이 인간에 의해 파악된 이(理)가 추측지리(推測之理)이고 추측지리는 인간의 경험과 추측이 축적될수록 즉 후세로 갈수록 유행지리에 점차 가까워지게 된다고 한다.
그런데 최한기의 경험적 인식론에 의하면 인간의 추측 작용은 형체를 인지하는 감각 기관을 통해 얻어진 경험을 토대로 이루어질 때 보편적인 지식을 획득할 수 있다고 하므로, 운화기의 인식도 결국 형체를 매개로 해서만 가능하게 된다.
그리고 형체화, 수량화를 통한 운화지기 내지 유행지리의 인식은 냉열기(冷熱器)·조습기(燥濕器)·음청의(陰晴儀) 등의 기구를 사용하여 기의 정(情)인 한열조습(寒熱燥濕)을 객관적으로 재고, 기의 배포 범위, 대소, 경중, 원근, 고저 등을 헤아림으로써 비로소 가능한데, 이를 다루는 학문이 역수학(曆數學)·물류학(物類學)·기용학(器用學) 등의 새로운 학문이므로 역산물리(曆算物理)의 학(學)이야말로 운화기의 실체에 접근할 수 있는 유일하고 근본적인 학문 분야라고 한다.
이처럼 역산물리의 학에 의해 경험적으로 밝혀진 운화지기는 종래의 학문에서 지고의 진리로 간주된 시험할 수도, 검증할 수도 없는 무형의 이, 무방(無方)의 신(神)이 아니라 유형의 이, 유형의 신으로 파악된다.
결국 최한기는 형질지기, 신기와 더불어 운화지기라는 개념으로 기의 한 측면을 규정함으로써 천지·자연의 운행과 변화의 원인을 기의 바깥에서 구하지 않아도 되는 기학의 틀을 마련했고, 또 대기운화와 통민운화를 구분하고 대기운화를 우위에 둠으로써 자연의 질서와 법칙을 인간의 가치로 해석하던 전통적 학문 방법론에서 벗어나 경험적·수학적 방법으로 자연과 인간을 해석하는 근대적인 역산물리학의 철학적 기초를 놓았다 할 수 있을 것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