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 )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울산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선사문화
유적
국가유산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고래사냥 관련 바위그림. 암각화.
이칭
이칭
Bangudae Rock Art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蔚州 大谷里 盤龜臺 岩刻?)
분류
유물/일반조각/암벽조각/암각화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국보(1995년 06월 23일 지정)
소재지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991-3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내용 요약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는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고래사냥 관련 바위그림이다. 1971년에 발견되었고 1995년에 국보로 지정되었다. 사냥과 어로와 관련된 300여 점의 그림이 새겨져 있다. 그중 고래를 사냥하는 사실적인 그림은 7,000년 전 신석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 지구상에 현존하는 고래사냥 그림 중 가장 오래된 것이다. 사냥하는 사람과 동물, 어로 및 사냥 도구 등을 통해 당시의 생활상을 엿볼 수 있다. 우리나라 선사시대 암각화 유적 중 가장 오래된 것으로, 약 7,000년~3,500년 전에 조성된 것으로 보인다.

정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에 있는 석기시대 신석기의 고래사냥 관련 바위그림. 암각화.
개설

1971년 문명대, 김정배, 이융조에 의해 발견되었으며 1995년 국보로 지정되었다. 우리나라에서 발견된 선사시대 암각화 유적 중에서 가장 오래되었으며 약 300여점의 그림들이 새겨져 있다. 바위에 새겨진 그림 중에서 고래를 사냥하는 매우 사실적인 그림은 약 7000년 전 신석기시대에 제작된 것으로서 지구상에 현존하는 가장 오래된 고래사냥 그림으로 평가되고 있다.

내용

울산광역시 울주군 언양읍 대곡리 999-1 일원에 위치하고 있다.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 유적은 울산 태화강 지류에 해당하는 대곡천변의 깎아지른 절벽에 너비 약 8m, 높이 약 3m 가량의 판판한 수직 암면에 그림이 집중적으로 새겨져 있다. 주변 10곳의 암면에서도 소수의 그림이 확인되고 있다.

바위의 암질은 셰일(shale)과 혼펠스(hornfels)로 구성되어 있다. 암면의 방향은 북향으로 석양이 질 무렵에만 잠시 빛이 들어오며 윗부분이 앞으로 돌출된 암음(岩陰) 구조로 되어 있다. 유적 발견은 울주 천전리 각석을 발견한 이듬해인 1971년 12월 25일 문명대, 이융조, 김정배가 천전리 각석을 답사하는 과정에 지역 주민의 제보를 통해 이루어졌다. 1984년 동국대학교 박물관에서 발간한 최초의 보고서에서는 191점의 그림이 소개되었으며, 2013년 울산암각화박물관이 실시한 정밀조사를 통하여 모두 307점의 형상이 표현된 것으로 파악되고 있다.

그림은 주제에 따라 크게 사람의 전신(全身)이나 얼굴을 표현한 인물상(人物象), 바다와 육지동물을 표현한 동물상(動物象), 배나 부구(浮具)와 같은 수렵이나 어로와 관련된 도구상(道具象), 그림의 주제나 형태를 명확하게 파악하기 어려운 미상(謎象)으로 구분할 수 있다. 인물상은 측면(側面)을 표현한 전신상이 많으며 활로 동물을 사냥하거나 두 손을 치켜든 모습, 악기로 보이는 긴 막대기를 불고 있는 모습 등은 사냥과 일종의 종교적 행위를 연상시키고 있다. 측면 전신상의 대부분은 다소 과장된 남근(男根)을 표현하고 있으며, 사지를 벌리고 있는 정면상이나 가면처럼 얼굴을 표현한 그림도 있다.

동물상들은 구체적인 종 구분이 가능할 정도로 각 동물의 형태와 생태적 특징들을 잘 표현하고 있다. 동물그림에서는 고래가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고 있으며 주암면 좌측 편에 집중되어 있다. 반면 사슴과 같은 발굽동물과 호랑이와 표범, 늑대와 같은 육식동물들은 주암면 우측 편에 많이 새겨져 있다. 구체적인 종 구분이 가능한 동물로는 북방긴수염고래, 혹등고래, 참고래, 귀신고래, 향유고래와 같은 대형고래류와 바다거북, 물개, 물고기, 바다 새와 같은 바다동물, 백두산사슴, 사향사슴, 노루, 고라니, 호랑이, 표범, 늑대, 여우, 너구리, 멧돼지 등의 육지동물이 있다.

고래는 대체로 20~30㎝ 정도 크기의 그림이 가장 많으며 큰 것은 80㎝ 정도이고 작은 것은 10㎝ 정도이다. 대부분의 고래 그림은 마치 하늘에서 내려본듯한 조감적(鳥瞰的) 표현으로 머리를 위로 향해 무리지어 헤엄치는 모습을 연상시킨다. 측면으로 새겨진 고래의 경우는 꼬리를 엇비스듬하게 새긴 “비틀림 화법”을 사용하여 물고기와 구별되는 고래의 수평 꼬리를 의도적으로 표현한 것으로 보인다. 이외에도 새끼를 업고 있는 어미고래나 물 위로 도약하는 모습 등 고래의 생태적 특징을 매우 생동감 있게 표현한 그림들도 있다. 몸통을 수평으로 배를 뒤집고 있는 고래 그림은 이미 죽은 것으로 표현한 것으로 판단되며 몸통에 새겨진 줄무늬는 일종의 분배(分配) 또는 해체(解體) 선으로 여겨지며 민족지 자료에서 볼 수 있는 원주민들의 고래 분배 그림과 매우 유사하다. 이와 같은 그림들은 고래와 같은 대형동물의 사냥과 분배에 관한 정보를 담고 있는 중요한 자료로 평가된다.

육지동물들은 주암면 우측편에 집중되어 있다. 고래와 달리 대부분 측면으로 표현되어 있으며 이는 네발 달린 육지동물의 형태를 가장 완벽하게 표현할 수 있는 화법이다. 사슴류에서 뿔을 관찰할 수 있는 종은 백두산 사슴, 우수리 사슴, 수컷 노루 등이 있으며, 이외 몸통의 형태, 털 무늬, 꼬리와 다리 길이 등을 통하여 종 구분이 가능하다. 육식동물은 몸의 무늬와 꼬리와 다리의 길이, 어깨선 등으로 판단할 수 있다. 유적에서 이런 방법을 통해 구분할 수 있는 종류는 백두산사슴, 사향사슴, 노루, 고라니 등이 있다. 고래와 사슴류는 몸통의 내부를 모두 쪼아 표현한 그림이 많으며 육식동물은 외곽선과 무늬만을 선으로 표현한 것이 많다. 이러한 차이는 그림의 중복관계를 따져 볼 때 시간적 차이를 반영하고 있는 것으로 판단된다.

유적에서는 고래류, 사슴류, 육식 동물의 순으로 비중을 갖고 있으며 거북과 물개, 물고기, 조류 등도 소수 확인할 수 있다. 주암면 좌측 상단에 새겨진 세 마리의 거북은 마치 무리지어 헤엄치는 고래를 인도하는 장면으로 표현되어 있다. 바다거북은 산란을 위해 초봄에서 여름 사이에 해안으로 오르기 때문에 흔히 민족지에서나 고대 신화에서는 바다와 육지를 넘나드는 상징적 동물로 해석되곤 한다. 물고기는 측면으로 표현된 상어와 물 위를 뛰는 연어로 보이는 물고기 머리 부분이 표현되어 있다. 바다 새 그림은 항상 고래 주위에 위치하고 있으며 이는 먹이를 사냥하는 고래 주위에 몰려든 바다 새를 연상시킨다. 동물그림 중에서는 먼 바다를 회유(回遊)하는 대형고래와 육지동물 중에서는 짝짓기 하는 장면이나 털갈이와 무늬, 낙각(落角) 등을 통해 계절을 유추할 수 있는 그림들도 있으며, 주로 환절기와 번식기에 나타나는 생태적 특성을 표현한 그림들이다.

도구상은 사냥 · 어로와 관련된 것으로 배와 부구, 작살, 그물, 어살, 활 등으로 유적의 조성시기와 당시 생활상을 이해할 수 있는 정보를 제공해 주고 있다. 유적에서는 그물을 이용해 고래를 잡는 장면과 호랑이를 포획하는 장면의 그림이 있다. 아직까지 선사시대 그물이 발굴된 사례는 없지만 동삼동 패총에서 출토된 토기표면에 찍힌 미세한 그물 망 흔적을 볼 때, 당시 어로뿐만 아니라 사냥에서도 그물이 널리 사용된 것으로 추정된다.

그리고 지금까지 흔히 목책(木柵)이나 울타리로 해석되어온 그림의 경우, 초기에 제작된 도면과 달리 실제 암면에서는 육지동물의 모습이 표현되어 있지 않다. 오히려 내부 형상의 윤곽선이 물고기와 유사하여 목책보다는 어살의 형태와 유사하다. 일부 연구자들은 이를 배나 무리를 지어 춤추는 사람으로 해석하기도 한다. 국내 유적에서 발굴된 사례는 없지만 일본의 죠몽[縄文]시대 유적에서 연어와 숭어잡이 어살이 확인된 바 있다. 그림만으로 이를 단정하기 어렵지만, 주제가 불분명한 이 그림을 통해 목축(牧畜)을 유추하는 것은 다소 무리가 있어 보인다.

유적에서는 고래 사냥을 매우 상세하게 표현한 장면들을 볼 수 있다. 고래 주변에 새겨진 배에는 17명, 7명, 5명 가량의 사람이 승선하고 있다. 배는 뱃머리와 고물이 반달처럼 휘어져 있으며, 고래 몸통에 박힌 작살과 줄에 매달린 부구와 연결되어 있다. 이는 지금까지도 행해지고 있는 원주민들의 고래사냥에서 사용되는 도구들과 거의 동일하다. 미상은 정확한 주제와 내용을 알 수 없는 그림으로서 그림의 상태가 양호하나 그 의미를 알 수 없는 주제미상(主題迷象)과 오래 세월을 거치면서 마모와 탈락 등으로 판독(判讀)이 어려운 형태미상(形態迷象)으로 세분할 수 있다. 이 중에는 일정한 패턴을 지닌 기호로 볼 수 있는 그림도 있겠지만, 유적에 표현된 그림만으로는 이를 구별해 내기는 어렵다. 기호는 실제 현실 속에서 볼 수 없는 관념적 표현물로 최소한의 반복적인 표현으로 일정한 패턴을 찾을 수 있어야 하기 때문이다.

암각화는 단단한 돌연모를 사용해 쪼기, 갈기, 긋기 수법으로 제작되었으며 각흔(刻痕)의 깊이와 폭, 크기, 밀도, 표현 기법을 통해 크게 4가지 유형으로 구분할 수 있다. 돌연모와 금속으로 새긴 그림은 각흔의 형태를 분석하여 구분할 수 있다. 대체로 돌 연모의 경우 단면의 형태가 “⋃”자 형이며 금속의 경우 “⊔” 자 형 또는 “⋁”자 형을 띤다. 이외에도 각흔의 깊이와 너비, 균일도(均一度)에서 그 차이를 어렵지 않게 구분할 수 있다. 먼저 유형Ⅰ은 쪼기 기법을 사용해 새긴 그림으로 형상의 크기가 작고 각흔의 깊이가 얕은 편이다. 전체 형상을 점 쪼기로 표현하였으며 고래를 사냥하는 장면이나 작은 동물, 주제를 알 수 없는 그림들로 구성되어 있다. 암면에서 가장 먼저 새겨진 그림에 해당한다.

유형Ⅱ는 흔히 면 그림으로 분류되어온 것으로 쪼기 기법을 사용해 그림의 내면을 모두 쪼아 내거나 일부는 자연면을 이용해 새끼 고래나 작살 등을 양각(陽刻)으로 표현한 것도 있다. 고래에 박힌 작살처럼 외곽을 긋기로 마무리한 그림도 있다. 점 쪼기에 비해 그림의 크기가 크고 각흔의 깊이가 상대적으로 깊고 규칙적인 편이지만 각흔이 다소 거칠게 남아 있다. 이 유형으로 표현된 그림들은 주 암면의 좌측 편에는 고래와 같은 바다 동물을 우측 편은 사슴이나 늑대, 여우와 같은 육지 동물들을 주로 표현하고 있다. 바다와 육지 동물의 비중은 거의 비슷하다.

유형Ⅲ은 흔히 선 그림으로 분류되어온 그림으로 각흔의 깊이가 깊고 쪼기와 함께 갈기 수법을 사용하였다. 그림의 윤곽선이 비교적 매끈하게 마무리 되었으며, 쪼아 새긴 각흔도 거의 남아 있지 않다. 이 유형에서는 바다 동물이나 사슴류보다는 호랑이나 표범과 같은 육식동물의 비중이 매우 높은 편이다. 유형Ⅱ와 유형Ⅲ은 그림의 가장 큰 비중을 차지하는데 그림의 주제에서도 바다동물에서 육식동물이란 뚜렷한 변화를 관찰할 수 있다.

유형Ⅳ는 쪼기와 함께 갈기 기법으로 이전에 새겨진 그림들을 많이 훼손하고 새긴 것으로 도약하는 고래와 새끼 멧돼지 그림이 있다. 전체적으로 그림이 크고 그 수도 적다. 그림의 중복관계를 통해서 선후관계를 유추할 수 있으며 후대로 갈수록 바다동물의 비중이 감소하고 육지동물과 육식류의 비중이 증가한다. 흥미로운 점은 암각화 유형의 주제 변화와 신석기시대 패총에 포함된 동물 유체의 비중에서 어떤 관련성을 찾아볼 수 있다는 사실이다. 그러나 암각화에 새겨진 그림은 단순히 사냥의 대상을 그대로 표현했다기보다는 관념적 표현물로 이를 직접적으로 비교하기 어려운 측면이 있다.

한데에 노출된 암각화는 정확한 제작연대를 추정하기 어렵기 때문에 유적 발견당시부터 조성연대를 두고 연구자들 간에 많은 이견이 존재하고 있다. 연구자들 사이에 견해차는 있겠지만 대체로 신석기시대 말에서 청동기시대 초기까지로 보는 견해가 많다. 그러나 전혀 다른 주제를 담고 있는 천전리 암각화가 유적에서 불과 2㎞ 내에 위치하고 있는 점, 우리나라 남부지방 전역에서 발견된 청동기시대 암각화에서 표현된 검, 동심원, 음문, 검파형, 이외 추상적인 기하문 등의 그림을 유적에서 전혀 볼 수 없다는 점에서 이들 유적을 모두 동시대로 보기는 어렵다.

최근 고고학적 자료를 통해 조성시기를 밝히려는 좀 더 객관적이고 과학적인 분석들이 시도되고 있다. 울산과 동남해안 일대의 패총에 포함된 동물유체 분석결과와 울산만 고(古)환경 연구 등에 따르면, 유적 조성의 중심연대는 지금으로부터 약 7,000~3,500년 전으로 추정되고 있다. 또한 부산의 동삼동 패총 출토 사슴문 토기, 그물문 토기, 조개가면, 양양 오산리 얼굴상, 통영 욕지도 패총 멧돼지 토우, 울산 신암리 여인상, 울산 세죽리 패총 물개 토우 등 암각화에 표현된 그림의 주제와 관련된 많은 유물들은 신석기시대 유적에서 볼 수 있다. 이외에도 2005년 창녕 비봉리 패총에서 배가 발굴된 바 있으며, 2010년 한국문물연구원이 실시한 울산 황성동 패총 발굴조사에서는 고래사냥을 실증적으로 밝혀주는 작살이 박힌 고래 뼈가 출토되었다.

이는 반구대암각화의 제작연대를 추정해볼 수 있는 결정적인 물증자료로서 과거 울산만과 해안지역에서 적어도 7,000년 전부터 고래사냥이 이루어졌으며 반구대암각화는 당시 고래 사냥집단에 의해 새겨진 것으로 추정된다. 따라서 당시의 생업 환경, 사냥과 어로 도구, 관련 유물, 시대적 맥락 등을 종합적으로 검토해볼 때 암각화 유적의 조성연대는 신석기시대 범주를 벗어나지 않는 것으로 판단된다.

특징

반구대 암각화에 표현된 고래사냥 장면과 약 22종에 이르는 육지와 동물그림은 우리나라 신석기시대 사람들의 생활상과 정신세계를 보여준다.

의의와 평가

울주 대곡리 반구대 암각화가 다른 나라 관련 학계에 알려지기 전까지, 인간이 바다에서 처음으로 고래를 사냥한 시기는 10~11세기로 추정되고 있었다. 반구대암각화는 이 보다 수 천 년이나 앞선 그림으로 인류 최초의 포경유적일 뿐만 아니라 북태평양 연안지역의 선사시대 해양어로문화를 이해하는데 매우 중요한 유적으로 평가되고 있다.

참고문헌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울산암각화박물관, 2012)
『울산 황성동 신석기시대 유적』(한국문물연구원, 2012)
「고고학적 맥락에서 본 암각화」(하인수, 『울주 대곡리 반구대암각화』, 울산암각화박물관, 2013)
「반구대암각화에 표현된 육지동물의 재인식」(강봉원, 『한국신석기연구』 23, 2012)
「반구대암각화」(이상목, 『한국고고학전문사전』, 국립문화재연구소, 2012)
「울산 대곡리 반구대 선사유적의 동물그림」(이상목, 『한국고고학보』 52, 2004)
「울산 태화강 중·하류부의 Holocene 자연환경과 선사인의 생활 변화」(황상일·윤순옥, 『한국고고학보』 43, 2000)
「울주 반구대암각화에 대하여」(김원룡, 『한국고고학보』 9, 198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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