울주 검단리 유적 (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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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주 검단리 유적 전경
울주 검단리 유적 전경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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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와 환호(環濠) · 화덕자리 · 고인돌 관련 복합유적. 사적.
내용 요약

울주 검단리 유적은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자리와 집터 주변을 둘러싼 도랑인 환호, 고인돌 등이 발견된 복합유적이다. 이 유적에서 주목할 점은 국내 최초로 완전한 모습을 갖춘 환호와 이와 관련된 마을의 구조가 확인되었다는 것이다. 환호는 능선을 따라 타원형으로 둘러져 있는데, 안쪽에는 집자리, 도랑, 구덩유구가 있고 바깥쪽에는 집자리 외에 무덤 3기가 있다. 이 유적은 환호 설치 이전의 취락, 환호취락, 환호가 폐기된 후의 취락 3단계로 나누어진다. 이 유적은 우리나라 환호 취락 유적 조사의 시발점으로 평가 받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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정의
울산광역시 울주군 웅촌면에 있는 청동기시대 집터와 환호(環濠) · 화덕자리 · 고인돌 관련 복합유적. 사적.
개설

1990년 8월 21일에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유적의 면적은 약 6,000㎡(4,000평)에 이르는데, 울산컨트리클럽 증설공사구역에 포함되어 1990년 부산대학교박물관이 약 3개월간 발굴조사하였다. 조사결과 집자리[住居址], 환호(環濠), 고인돌〔支石墓〕과 함께 삼국시대조선시대의 유구도 확인되었다. 회야강(回夜江)과 곡천천(曲泉川) 사이의 산 능선 중앙부에서 서쪽으로 뻗어 나온 낮은 구릉(해발 104∼123m)의 정상부와 서남쪽 사면에 해당한다.

내용

집자리는 대체로 등고선에 평행하게 배치되며 평면형태는 방형과 장방형이 많다. 기둥구멍[柱穴]의 배치를 보면 방형은 4주식(柱式), 장방형은 6주식의 구조이며, 화덕자리[爐址]는 중앙에서 한쪽으로 치우친 곳에 1기가 설치되었다. 집자리는 유구의 중복관계와 공간배치를 통해 환호의 설치를 기준으로 하여 3단계로 나누어진다. Ⅰ기는 환호 설치 이전의 취락, Ⅱ기는 환호취락, Ⅲ기는 환호가 폐기된 후의 취락으로 각 단계는 시기 폭이 적을 것으로 추정된다.

Ⅰ기는 집자리 26기가 확인되었는데, 집자리의 면적은 14㎡를 초과하지 않는 중 · 소형이 많다. 4호는 크기가 길이 380㎝, 잔존 너비 490㎝, 깊이 20㎝의 장방형이다. 화재로 폐기된 집자리는 환호가 지나가는 곳에 위치하고 있어 환호 설치 시 의도적으로 폐기했을 가능성이 높다. 토기는 일부 빗금무늬[斜線文]도 있지만 구멍무늬토기〔孔列土器〕가 많으며, 깊은바리모양토기[深鉢] 가운데 손잡이[把手]가 부착된 것이 몇 점 있다.

Ⅱ기는 집자리 17기가 확인되었는데, 1단계에 비해 규모가 크다. 5호는 크기가 길이 364㎝, 너비 378㎝, 깊이 50㎝의 방형이고, 31호는 잔존 길이 555㎝, 너비 392㎝, 깊이 40㎝의 장방형이다. 주거영역(住居營域)은 환호의 안과 밖으로 나누어지는데, 환호 안은 집자리 6기, 망루로 추정되는 굴립주건물지(掘立柱建物址) 1기와 주거구역과 떨어진 곳에 위치하여 제사용(祭祀用)으로 추정되는 2기의 도랑[溝]으로 이루어져 있다. 출토된 토기는 구멍무늬토기는 소수만 남고 짧은빗금무늬와 횡선무늬[橫線文]가 증가하며, 붉은간토기[丹塗磨硏土器]와 손잡이달린깊은바리모양토기[把手附深鉢形土器]가 증가한다.

Ⅲ기는 집자리 37기가 확인되었는데, 이전에 비해 집자리의 수도 많아지고 분포범위도 확대되는 현상을 보여 이전 단계에 비해 인구의 증가를 예상할 수 있다. 환호가 폐기된 후 구릉의 정상부와 경사면의 두 그룹으로 주거영역이 구분되며 대형과 소형집자리 간의 격차도 심해진다. 9호는 크기가 길이 548㎝, 너비 360㎝이고, 29호는 길이 552㎝, 너비 372㎝, 깊이 28㎝의 장방형이다. 출토유물은 구멍무늬토기는 소멸되고 Ⅱ기부터 유행한 짧은빗금무늬와 횡선무늬가 지속되면서 손잡이달린깊은바리모양토기는 더욱 증가한다. 반달돌칼〔半月形石刀〕, 홈자귀〔有溝石斧〕, 돌낫〔石鎌〕 등 농경문화와 관련된 석기의 종류와 수량이 가장 많다.

환호는 능선을 따라 타원형상으로 둘러져 있는데, 규모는 총 연장 298m로 남북에 각 1개소의 출입구를 기준으로 장경 118m, 단경 70m이다. 환호 안쪽에는 집자리, 굴립주건물지, 도랑, 구덩유구[竪穴遺構]가 있으며, 바깥쪽에는 15∼20m정도 떨어져 집자리와 도랑 외에 3기의 무덤이 있다.

무덤은 고인돌 2기와 돌덧널무덤〔石槨墓〕 1기가 있다. 고인돌 1호는 덮개돌[上石] 크기가 길이 240㎝, 너비 132㎝, 깊이 32㎝이며 고임돌[支石]이 있다. 덮개돌이 뚜껑돌[蓋石]을 겸하고 지하에 매장시설을 마련하지 않은 지상식(地上式) 고인돌로 추정된다. 3호는 덮개돌 주위에 석열(石列)을 돌려 묘역(墓域)을 표시하고, 덮개돌 아래에 깬돌을 설치하여 돌덧널의 역할을 한 유사석곽형(類似石槨形)의 지상식이다. 유물은 출토되지 않았다. 무덤구역을 주거구역과 의도적으로 분리해서 축조한 점으로 보아 영역의 구분이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우리나라에서 처음으로 환호의 완전한 모습과 그와 관련된 마을의 구조가 확인된 유적으로서 이후 본격적인 환호취락 유적 조사의 시발점이 되었다. 방사성탄소연대 측정결과는 22호 2830±100 B.P.(보정연대 서기전 880), 59호 2880±70 B.P.(보정연대 서기전 930) 101호 2660±100 B.P.(보정연대 서기전 710)이다.

참고문헌

『한국고고학사전』(배진성, 국립문화재연구소, 2002)
『울산 검단리 마을유적』(부산대학교박물관, 1995)
「울주검단리유적발굴조사개보」(안재호, 『한국지석묘의 제문제: 제14회 한국고고학전국대회발표요지』, 199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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