웅치전투 ()

목차
관련 정보
완주 웅치 전적비 전경
완주 웅치 전적비 전경
조선시대사
사건
임진왜란 때인 1592년(선조 25) 7월 이복남(李福男) 등이 웅치에서 왜군과 싸운 전투.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임진왜란 때인 1592년(선조 25) 7월 이복남(李福男) 등이 웅치에서 왜군과 싸운 전투.
내용

금산을 점거한 고바야카와(小早川隆景)의 왜군은 험한 웅치를 넘어 전주방면으로 진격하려 하였다. 이에 나주판관 이복남(李福男), 의병장 황박(黃璞), 김제군수 정담(鄭湛), 남해현감 변응정(邊應井) 등은 7월 8일 군대를 연합하여 험한 지형을 이용하여 왜군의 침입을 막았다.

그러나 우세한 대대적인 왜군의 재차 공세를 받아 우리 군대는 결사적으로 싸웠으나 전세가 불리하여지자 이복남은 퇴각하고, 정담과 변응정은 화살이 다 떨어질 때까지 용전하여 적병 수백명을 죽였으나, 마침내 포위되어 모두 죽었다.

전주를 보수(保守)함에 있어 이들의 공이 실로 크다고 하겠다. 싸움이 끝나자 왜군은 우리 군사의 시체를 모아 길가에 묻고 표목(標木)에 ‘弔朝鮮國忠肝義膽(조조선국충간의담 : 조선의 충성스럽고 의로운 행위에 조의를 표함)’이라 써놓고 금산으로 퇴각하였다.

참고문헌

『선조실록(宣祖實錄)』
『선조수정실록(宣祖修正實錄)』
『징비록(懲毖錄)』
『난중잡록(亂中雜錄)』
관련 미디어 (1)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