봉서산 원원사 ( )

목차
관련 정보
경주 원원사 중 천불보전 정측면
경주 원원사 중 천불보전 정측면
불교
유적
국가유산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봉서산(鳳棲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문두루비법의 중심도량이 되었던 사찰.
국가문화유산
지정 명칭
경주 원원사지(慶州 遠願寺址)
분류
유적건조물/종교신앙/불교/사찰
지정기관
국가유산청
종목
사적(1963년 01월 21일 지정)
소재지
경북 경주시 외동읍 모화리 2번지
• 본 항목의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통해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목차
정의
경상북도 경주시 외동읍 봉서산(鳳棲山)에 있는 남북국시대 통일신라의 문두루비법의 중심도량이 되었던 사찰.
내용

대한불교천태종에 속한다. 옛 절터 밑에 새로 지은 소규모의 사찰이 있다. 신라 신인종(神印宗)의 개조(開祖)인 명랑법사(明朗法師)가 세운 금광사(金光寺)와 더불어 통일신라시대에 있어서 문두루비법(文豆婁秘法)의 중심도량이 되었던 사찰이다. 명랑의 후계자인 안혜(安惠) · 낭융(朗融) 등과 김유신(金庾信) · 김의원(金義元) · 김술종(金述宗) 등 국사를 논의하던 중요한 인물들이 함께 뜻을 모아 세운 호국사찰이다. 창건 이후의 역사 및 폐사시기 등은 알려지지 않고 있다.

다만 4대덕(四大德)인 안혜 · 낭융 · 광학(廣學) · 대연(大緣)의 유골이 모두 절의 동쪽 봉우리에 묻혔기 때문에 사령산조사암(四靈山祖師巖)이라 하였다고 한다. 현재는 부도(浮屠) 4기와 동 · 서 삼층석탑이 남아 있다. 2005년 보물로 지정된 이 탑은 일반적인 신라의 탑들에 비하여 탑신이 가늘어 가냘픈 느낌이 들지만, 이러한 약점을 탑에 조각된 사천왕상과 12지신 상이 보강해주고 있다. 비교적 크고 안정된 이중기단은 상층기단의 12지신 상 조각을 위한 것이다. 이 탑은 1933년에 도괴되었던 것을 일본인이 복원하여 세워놓은 것이다. 또한, 석탑의 동북쪽 500m 거리에 부도 3기가 있고, 서북쪽 300m 지점에 최근 발견된 1기의 부도가 있다. 이들은 모두 고려 이후의 작품으로 추정된다. 이 가운데 서북쪽의 부도는 원좌(圓座)내에 범자삼자(梵字三字)를 새겨놓았고, 연화문 등의 조각이 다른 부도와는 구별되는 독특한 조형미가 있다. 옛 절터는 1963년 사적으로 지정되었다.

참고문헌

『삼국유사(三國遺事)』
『한국의 사찰』3 신라의 폐사Ⅰ(한국불교연구원, 일지사, 1974)
관련 미디어 (2)
집필자
김위석
    • 항목 내용은 해당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사실과 다른 내용, 주관적 서술 문제 등이 제기된 경우 사실 확인 및 보완 등을 위해 해당 항목 서비스가 임시 중단될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