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은 조씨(曺氏). 속명은 한룡(漢龍). 법명은 세염(洗染). 나중에 원정이라 하였고, 법호는 입록(立祿)·청한(淸閑)·도연(道衍) 등으로 썼다. 오랫동안 고려왕실을 섬겨온 집안에서 태어났으며, 1355년(공민왕 4)에 그의 형제인 경룡·응룡·섭룡·견룡과 함께 5형제가 모두 갑과에 합격하였으며, 참의가 되었다.
1392년에 고려가 망하자 ‘忠臣不事二君(충신불사이군)’의 여섯 자를 의대 사이에 쓴 뒤, 벼슬을 버리고 금천(錦川)에 숨어서 승려로 행세하며 살았다. 이 때 전 장령 서견(徐甄)과 함께 시를 읊어 화답하면서 비분강개의 기분을 토로하곤 하였다.
이것이 문제가 되어 관청에서 두 사람을 형벌로 다스리려 하였으나, 태조가 “백이·숙제와 같은 무리들을 구태여 죄줄 것이 있느냐.” 하여 무사하였다.
하루는 어머니를 뵈러 가니 승려가 된 모습을 보고 슬퍼하자, 다시 머리를 기르고 서울로 가서 벼슬이 참의에까지 이르렀다. 그 뒤 늙은 어머니를 봉양한다는 핑계로 고향으로 돌아와 있다가, 어머니가 죽자 3년상을 치르고 다시 3년 동안을 치효(致孝)한 뒤 가야산으로 들어가 승려가 되었다.
전국의 유명 사찰을 다니다가 불회사(佛會寺)에 이르러서 이를 중건하였다. 뒤에 다시 이름을 원정이라 고치고 서울로 나가서 태종을 만나 문답을 나누었고, 태종으로부터 청한이라는 호를 받았다. 1413년에 화순의 불호사(佛護寺)를 중창하고 머무르다가 입적하였다.
세조 때에 국사로 추증되고 불호사에 탑비를 세웠다. 효자비가 봉황산 아래에 세워졌는데, 태종은 ‘鮮忠麗孝(선충려효)’ 넉 자를 내려 이를 비음(碑陰:비문)에 새기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