월계동장고분(月桂洞長鼓墳)은 광주광역시 광산구에 있는 삼국시대의 전방후원분이다. 발굴 조사 결과 전방후원분이라는 분형과 이를 둘러싼 방패형 도랑, 굴식돌방 유형, 1호분 널방에 구축된 돌널, 분구에 세워 놓은 원통형 토제품 장식 의례 등에서 일본 북부 큐슈〔九州〕 지역과의 관계가 확인된 것은 물론이고, 널방 내부에서 출토된 은제 관못과 나무널의 관고리 등에서 백제 장제의 영향도 설명해 주었다. 월계동장고분 축조 시기는 1호분이 6세기 전후, 2호분은 6세기 중엽으로 알려져 있다.
월계동장고분은 전방후원분(前方後圓墳) 2기가 어우러진 유적이다. 광주광역시 광산구 월계동에 자리하며, 광주첨단과학산업단지 조성 과정에서 발굴 조사되었다. 발굴 조사 결과 유적의 중요성이 확인되어 원형으로 복원 · 보존되었으며, 현재는 광주광역시 기념물로 관리되고 있다. 고분이 자리한 마을 지명은 '장구촌'으로 불리었는데, 장구 모양의 분형과 관련해 유래된 것임을 알 수 있다.
1호분은 도랑을 포함한 전체 길이가 60m 내외이며, 분구 길이는 45m에 이른다. 도랑은 방패형으로 일본 전방후원분에서 일반적으로 확인되는 형태이다. 돌방은 원부 중앙에서 한쪽으로 치우쳐 구축하였는데, 분구 중간 높이에 자리한다. 돌방은 민가가 분구에 들어서면서 일부분이 훼손되었는데 6 · 25전쟁 때에는 반공호로 사용되었다고 한다.
1호분 돌방은 굴식돌방 구조로서 평면 형태가 장방형이다. 벽석(壁石)은 널빤지처럼 생긴 깬돌을 사용해 구축하였으며, 바닥에는 잡석을 다짐한 면 위로 잔자갈을 깔았다. 널방 내부에는 돌널을 뒷벽과 같이 나란하게 설치하였다.
돌널은 큰 널돌을 세우고 안쪽 바닥에 잔돌을 깐 구조로서 길이 230㎝, 너비 130㎝, 높이 20㎝ 내외이다. 돌상자 혹은 이시야가타〔石屋形〕로 불리는 것과 닮아 있는데, 일본 구마모토〔熊本〕 지역에서 많이 보이는 종류이다.
널방 중앙에서 약간 치우쳐 만든 널길은 2매의 널돌로 덮여 있는데, 바깥쪽으로 약간 벌어진 평면 형태이다. 교란된 돌방 내부에서는 은으로 장식된 관못과 나무널의 관고리 등이 출토되었다. 고분 주위를 따라 둘러진 방형형 도랑에서는 원통형 토제품, 제사용 목기, 토기 등이 상당량 출토되었다. 원통형 토제품은 2조돌대 원통형과 나팔형이 주를 이루는데, 일본 북부 큐슈 지역과 산인(山陰) 지방 출토품과 비교된다.
2호분은 1호분의 북동쪽으로 약간 떨어져 자리해 있다. 분구 길이는 34m로써 1호분보다 규모가 작은 편이다. 분구 주위로 둘러진 도랑은 역시 방패형을 띤다. 돌방은 원부에 자리하는데 분구 중간 높이에서 구축하였다. 돌방은 굴식돌방 구조를 띠며, 널방의 한쪽 측벽에 장대석(長臺石)을 사용하였다. 해남월송리조산고분 돌방과 닮은 구조이다.
널방 평명 형태는 장방형을 띠나, 훼손 정도가 심해 원래 구조는 자세히 확인할 수 없다. 널방 바닥에서는 토기와 철기 조각들이 유리구슬과 함께 일부 수습되었다. 도랑 내부에서는 제사에 사용된 토기를 비롯해 상당량의 원통형 토제품이 출토되었다.
월계동장고분은 정식 보고서가 아직 출간되지 않아 보다 구체적인 내용은 알 수 없다. 그러나 전방후원분이라는 분형과 이를 둘러싼 방패형 도랑, 굴식돌방 유형, 1호분 널방에 구축된 돌널, 분구에 세워 놓은 원통형 토제품 장식 의례 등에서 일본 북부 큐슈 지역과의 관계가 확인된 것은 물론이고, 널방 내부에서 출토된 은제 관못과 나무널의 관고리 등에서 백제 장제의 영향도 설명해 주었다.
고분에서 확인된 다원적 요소는 고분 피장자의 출자 내지는 생전 활동의 정황을 보여 주는 것으로, 영산강 유역과 백제 그리고 일본열도와의 당시 국제적 관계를 연구하는 데 좋은 자료로 평가되고 있다. 월계동장고분 축조시 기는 1호분이 6세기 전후, 2호분은 6세기 중엽으로 알려져 있다. 고창 칠암리고분과 함께 두 세대에 걸쳐 축조된 전방후원분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