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수부 ()

목차
관련 정보
강화유수부 동헌 정측면
강화유수부 동헌 정측면
조선시대사
제도
고려 · 조선시대 옛 도읍지나 행행지 및 군사적인 요지에 설치되었던 관서.
목차
정의
고려 · 조선시대 옛 도읍지나 행행지 및 군사적인 요지에 설치되었던 관서.
내용

유수부제도는 당·송의 옛 제도를 원용한 것으로, 고려시대에는 옛 도읍지인 서경·동경·남경 등지에 설치되었고, 조선시대에는 옛 도읍지인 개성, 태조의 어향인 전주 및 강화·광주(廣州)·수원 등지에 설치되었다.

고려시대 유수부조직은 3품 이상의 유수, 4품 이상의 부유수 각 1인을 두었으며, 이밖에 6품 이상의 판관, 7품 이상의 사록참군사(司錄參軍事), 장서기(掌書記) 각 1인이었으나 서경만은 판관·사록참군사가 각각 2인이었다.

여기에 8품 이상의 법조(法曹), 9품 이상의 의사·문사 각 1인을 두었으나 서경에는 의사·문사의 설치 기록이 보이지 않는다. 유수관은 외직으로 처리되었다.

조선 초기에 설치된 개성부에는 종2품의 유수 2인이었으나 1인은 경기도관찰사가 겸하였으며, 종4품의 경력(經歷), 종5품의 도사(都事)가 각 1인씩 있었고, 부민(府民)의 교육과 향촌의 교화를 위하여 교수 1인을 두었으며, 이 밑에 경아전(京衙前)으로 서리(胥吏) 40인으로 구성되어 있었다.

조선 후기에는 수도의 외곽을 방어하기 위하여 강화와 광주, 그리고 수원에도 유수부를 두었으나 이들은 군사적인 행정이 주임무가 되었다.

참고문헌

『고려사(高麗史)』
『세종실록(世宗實錄)』
『세조실록(世祖實錄)』
『경국대전(經國大典)』
『대전회통(大典會通)』
「조선왕조(朝鮮王朝)의 유수부경영(留守府經營)」(이존희, 『한국사연구』47, 1984)
집필자
차문섭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