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문화(文化). 아버지는 유빈(柳濱)이다.
1586년(선조 19) 홍원현감(洪原縣監), 이듬해 사복시주부(司僕寺主簿)가 되고, 1592년 함안군수로 재직 중 임진왜란을 당하였다. 성이 왜적에게 포위당하자 군민(軍民)을 규합하여 고수하고, 곽재우(郭再祐)의 의병에게 진로를 차단당한 왜적을 추격하여 적 47급을 참획하였다.
다시 휘하장병을 거느리고 진해에 이르러 당항포싸움에서 패하고, 밀려오는 왜적을 맞아 이순신(李舜臣)과 협공하여 이를 무찔렀다. 이어서 금강을 따라 침입하는 적과 대항하여 직산현감 박의(朴誼)와 함께 격퇴하였다.
여러 차례의 전공으로 경상우도병마절도사에 특진되었다. 그 해 10월 진주성이 왜적에게 포위당하자 이를 구출하기 위하여 창원으로부터 급히 출동하였는데, 성밖에 이르러 사천현감(泗川縣監) 정득열(鄭得說), 가배량권관(加背梁權管) 주대청(朱大淸)과 합세하여 왜적과 싸우던 중 전사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