유약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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백자 유약의 반투명성
백자 유약의 반투명성
공예
개념
토기 · 도기 제품의 표면에 씌워 가열하여 녹아붙은 균질의 규산염 혼합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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내용 요약

유약은 토기·도기 제품의 표면에 씌워 가열하여 녹아 붙은 균질의 규산염 혼합물이다. 물리화학적 성질은 유리질이며, 강산성 또는 강알칼리성 용액 이외에는 녹지 않는다. 기체·액체를 흡수하여 침투시키지 않고 장식성이 뛰어나 고대부터 사용되어 왔다. 도자기의 종류에 따라 도기유·석기유·자기유로 나뉘는데 각기 용해되는 온도가 다르다. 사용된 원료에 따라, 또는 굽고 난 후의 외관 상태에 따라 종류를 나누기도 한다. 유약은 기원전 3300년경부터 사용되기 시작하여 채색재료의 첨가와 고온 환원염 번조기법 응용 등으로 다양하게 발전해 왔다.

목차
정의
토기 · 도기 제품의 표면에 씌워 가열하여 녹아붙은 균질의 규산염 혼합물.
내용

물리적 · 화학적 성질은 유리질(琉璃質)이며, 강산(强酸) 또는 강알칼리 이외에는 불용성(不溶性 : 액체로 되지 않는 성질)이다. 기체 및 액체를 흡수하여 침투시키지 않으며 장식적이기 때문에 고대부터 사용되어왔다. 유약의 종류와 명칭은 도자기의 종류에 따라 도기유(陶器釉) · 석기유(炻器釉) · 자기유(磁器釉) 등으로 나눌 수 있으며, 도기유는 1,100℃ 내외, 석기유는 1,200∼1,300℃, 자기유는 1,300℃ 내외에서 각각 용해되는 것을 말한다.

사용원료에 따라 장석유(長石釉) · 알칼리유 · 석회유(石灰釉) · 식염유(食鹽釉) · 연유(鉛釉) · 아연유(亞鉛釉) 등으로 나누어지며, 외관상태에 따라 백유(白釉) · 색유(色釉) · 청자유(靑磁釉) · 유리유(琉璃釉) · 흑유(黑釉) · 투명유(透明釉) · 유탁유(乳濁釉) · 무광택유(無光澤釉) · 결정유(結晶釉) · 균열유(龜裂釉) 등으로 나누기도 한다.

최초의 유약은 서기전 3300년대로 추정되는 고대 이집트의 알칼리유이다. 연유는 중국 허난성(河南省) 진춘(金村)의 묘(서기전 550∼380년)에서 녹갈색의 연유호(鉛釉壺)가 발견되어 중국에서 최초로 발명되었음이 밝혀졌다. 연(鉛)은 용해력이 높아 매용제(媒熔劑)로 사용되며 규산과 화합하면 700∼800℃의 저화도에서 유약을 용해시킨다.

저화도 연유는 산화동(酸化銅) · 산화철(酸化鐵) 등의 채색재료가 첨가됨에 따라 녹색유(綠色釉)와 갈색유(褐色釉)로 나타난다. 갈색유는 서기전 100년경인 전한(前漢) 중기부터 나타나며, 녹색유는 서기 전후의 전한 후기에 등장하여 그 사용 범위가 광범위하였고, 갈색유의 사용은 후한(後漢)에서는 거의 사라지는 반면 녹색유는 전성기를 이룬다. 이러한 저화도 연유는 서기전 1세기부터 서기 3세기까지가 전성기이며, 이후 5세기 전반까지는 고화도 회유의 발전으로 공백기를 맞게 되다가 5세기 후반부터 다시 살아나 유질이 약한 부장용명기(副葬用明器)와 녹색유와(綠色釉瓦) 등에 주로 사용되며 수(隋) · 당(唐)대에까지 폭넓게 발전하였다.

회유는 맨 처음에 중국에서 발생하여 근대에 이르기까지 동양에서 가장 많이 사용된 유약이다. 초목의 재는 주성분인 규산(SiO₂) · 산화알루미늄(Al₂O₃), 기타 부성분(副成分)으로 이루어져 있기 때문에 단독으로도 유약이 될 수 있다. 회유의 발견은 번조(燔造) 때 재가 기물 위에 떨어져 온도가 높아짐에 따라 태토(胎土)의 장석질(長石質)과 함께 용해되어 자연유를 이루는 데서 착안되었다고 믿어진다. 이후에 재와 태토를 혼합하여 기물의 표면에 씌워서 번조하였으리라고 추측되므로 이것이 회유의 기원이라고 본다. 발생시기는 서기전 4000∼3000년경이라고 하나 현존 유물로는 서기전 2000년의 중국 허난성 은허(殷墟)에서 1,000℃ 이상의 고화도 회유가 제작되었음이 밝혀졌다.

고화도의 회유는 연유보다 심원한 느낌과 장중함이 있어 중국에서 가장 대표적인 유가 되어 점차 의도적인 생산으로 발전하였다. 이와 같은 초목의 재에는 소량의 철분이 있어서 산화번조 때에는 엷은 황갈색을 띠고 환원번조 때에는 엷은 녹청색을 띠므로 이것이 초기 청자유의 발생동기이다. 한대(漢代)에 성행하였던 회유는 후한에서는 생산지가 집약되어 원료가 풍부한 저장성(浙江省) 지방을 중심으로 발전하여 고월자(古越磁)와 같은 청자유를 입힌 자기를 제작하게 되었다.고월자의 유질은 한대의 회유보다 크게 진보하여 환원염 번조의 농담이 적은 균질균색(均質均色)의 안정된 유로 정착되었다. 이후부터 고화도 회유의 제작은 백색유에서 흑색유까지 다종다양하게 발전하여 근대에까지 이르고 있다.

참고문헌

『도자기공업(陶磁器工業)』(조봉환, 이공도서출판사, 1973)
『陶器辭典』(加藤唐九郎 編, 工業圖書株式會社, 1937)
『古陶磁の科學』(內藤匡, 雄山閣, 1978)
『中國陶磁史』(佐藤雅彦, 平凡社, 1979)
「삼국시대 鉛釉陶器의 특징과 연원」(이종민, 『역사와 담론』, 2017)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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