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기계(杞溪). 자는 이천(伊天), 호는 석은(石隱)·기재(棄齋). 유석(兪晳)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예조판서 유명홍(兪命弘)이다. 아버지는 유수기(兪受基)이며, 어머니는 노론사대신의 한사람인 김창협(金昌協)의 딸이다.
어려서부터 할아버지에게 배웠고, 1733년(영조 9) 진사시에 합격하여 도사·직장·좌랑 등을 역임한 뒤, 1743년 정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주로 삼사에 출입하였다. 1758년 당직 승지로서 장헌세자의 평양 밀행을 막지 못하였다 하여 파직되었다가 후에 복관되었다.
이조참의·대사성·예조참판 등을 역임하고 1771년 도승지에서 강화부유수가 되었다. 대사헌 재임시 세자찬선(世子贊善) 송명흠(宋明欽)의 관직 추삭(追削)과 상국(相國) 김치인(金致仁)의 남해 유배를 논할 때 대간들의 중벌을 반대하였다.
영조 말년에 특지로서 이광좌(李光佐)·조태억(趙泰億) 등의 관직을 복구하려 할 때, 원인손(元仁孫)의 반대상소에 동조하다가 왕의 미움을 사 구금되었다가 용서되었다. 직언을 잘 하였고 시문에 뛰어났다. 저서로 『석은집』이 전하여진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