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의지(誼之). 유태명(柳泰明)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유(柳愈)이다. 아버지는 대사간 유선양(柳善養)이며, 어머니는 이도보(李道普)의 딸이다.
1769년(영조 45)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하여, 1778년(정조 2) 정언(正言)·지평(持平) 등을 거쳐 홍문관에 들어갔다. 1780년과 그 이듬해에 강원도 안핵어사(按覈御史와)와 평안도 암행어사로 파견되었다. 1781년 실록청도청낭청(實錄廳都廳郎廳)이 되어 『경종개수실록』편찬에 참여하였다.
이듬해에 병조참의, 1786년 대사간, 1789년 병조참판에서 2년 뒤에 다시 대사간으로 전임되었다. 1797년 승지, 이어 홍주목사로 나아가 관에 대한 백성의 경비부담을 줄여줄 것을 조정에 건의하여 탕감하였다.
1797년 대사헌으로 치사하였다. 조정에서는 신중한 언행으로 구임(久任)하였고, 목민관으로 나아가서는 검소함과 위엄으로써 일부 지방민들의 간사하고 교활한 행위를 그치게 하였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