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전주(全州). 자는 효숙(孝叔), 호는 회헌(檜軒) 또는 농암(聾巖). 유습(柳濕)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유극서(柳克恕)이다. 아버지는 직제학 유빈(柳濱)이며, 어머니는 윤방익(尹邦益)의 딸이다.
1419년(세종 1) 생원시에 합격하고, 1426년(세종 8) 식년문과에 동진사로 급제하였다. 그 뒤 검열을 거쳐, 감찰·수찬을 역임하였다. 1436년 문과 중시에 급제하고 직제학에 올랐다. 동부승지를 거쳐 도승지가 되었으나 학문에만 능할 뿐, 과단성이 결여되어 사무처리는 좌부승지인 황수신(黃守身)에게 맡겨서 처리하게 하였다.
1447년 이조참판 역임 시 동반직(東班職)에 있던 우부승지 김유양(金有讓)의 아들을 잘못 서반직(西班職)에 옮겨놓은 죄로 파직되었다.
그 뒤 다시 예조참판으로 기용되었으나 그때 상을 당함으로써 몸이 쇠약해져 관직을 감당하기 어렵게 되자, 세종이 고기를 하사하여 보신을 시켰다. 그러나 끝내 병으로 사직하고 말았다. 문장에 능하였다. 저서로는 『회헌일고』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