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풍산(豊山). 자는 계유(季裕). 예안 출신. 아버지는 유빈(柳贇)이다.
1579년(선조 12)에 진사가 되고, 훈도로서 1585년 식년문과에 병과로 급제, 교서관정자가 된 뒤 전적(典籍)을 역임하고 향리로 돌아와 있던 중 임진왜란을 당하였다.
이 때 사족(士族)들이 적에게 대항하려 하지 않고 피난하자, 홀로 향병 수백명을 모아 고을을 보전하려 하였다. 그러나 함경도 지역에서 태백산맥을 타고 퇴각하던 왜적을 맞아 싸우다가 소천(小川)에서 전사하였다.
이 소식이 전해지자, 향리의 사족들이 서로 들고 일어나 왜적과 싸워 영남일대의 왜적을 격퇴하였다. 참의에 추증되고, 봉화(奉化)의 경현사우(景賢祠宇)에 제향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