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문 필사본 1종과 국문 활자본 1종이 전한다. 국문 필사본은 일본 동경의 동양문고 소장본으로 국립중앙도서관에 영인본이 있다. 향목동 세책본 중 하나이며 '유화기연(柳花奇緣)'이라는 제명으로 되어 있다. 필사기를 통해 1905년과 1909년에 필사되었음을 알 수 있다.
국문 활자본은 1918년에 대창서원과 보급서관에서 발행한 것으로, 10회의 회장체 형태로 되어 있다. '유화기몽'이라는 제명을 갖는다. 제명은 필사본에서 활자본으로 만들어지면서 개명된 것으로 보인다.
필사본과 활자본은 내용과 구성면에서 일치한다.
명나라 형산(衡山) 상운촌(祥雲村)에 사는 처사 유현(柳玄) 부부는 연화봉 자하암에 불공을 올려 아들을 낳았다. 이름을 유춘(柳椿)이라 하였는데, 남녀불분(男女不分)의 성불구자였다. 유춘의 전신인 태을선(太乙仙)이 요지연(瑤池宴)에서 술에 취해 선녀를 희롱하고 소변을 싼 죄 때문에 이와 같이 비정상적으로 태어난 것이었다. 그러나 선녀가 유현 부부에게 현몽하여 유춘이 분명한 남자라는 점, 초년에 고생하지만 장성하면 부귀공명을 누릴 것이라는 점, 구혼자가 있으면 받아들여야 한다는 점을 알려 주었다. 유춘은 어려서부터 영웅의 기상이 있고 효행이 뛰어나 자하암 혜원대사 문하에서 수학하고, 병부 상서 화영의 마음에 들어 사위가 되었다. 화 소저와 혼인한 후 유춘은 수년 동안 부부 관계를 가지지 못하였는데, 성불구임이 드러나자 유춘은 처가에서 쫓겨나 아미산 청허대사에게 도학을 익혔다.
화 소저의 아버지 화 상서는 벼슬을 여러 번 거절하다가 모함을 받아 장사(長沙)에 유배되었다. 화 소저는 장평이라는 불량배가 겁탈하려 하자 시비 옥섬과 함께 도망치다가 강물에 투신하였는데, 부처의 계시를 받은 자하암 혜원대사에게 구출되었다.
한편, 유춘은 청허도사를 떠나 장안의 어느 잔치 자리에 참여하여 미색이 출중한 기생 옥낭과 인연을 맺었다. 이후 옥낭은 노비를 대신하여 종노릇을 하며 유춘과 함께 살다가 그에게 성기가 없음을 알게 되었다. 이에 유춘이 술에 취해 잠들었을 때, 칼로 유춘의 살을 째고 성기를 꺼내어 남자가 되게 하였다. 유춘은 이듬해 문무 양과에 장원하여 한림학사 겸 우림대장이 되고 금의환향하였다. 그리고 자하암에 갔다가 화 소저와도 재회하여 그녀를 집으로 데리고 왔다.
유춘이 서울로 돌아온 후, 서융(西戎) 토번이 회흘(回紇)과 합세하여 침범해 왔다. 이에 자원하여 정서대원수겸천하병마도독(征西大元帥兼天下兵馬都督)이 되어 행군 도중 옥낭을 만나 정회를 폈다. 유춘은 청허대사의 교시를 받아 서융을 토벌하고, 회군하는 길에 산적 장평도 처치하였다. 유춘은 병부상서 · 문헌각 · 태학사 · 우림장군 · 천하병마도독이 되고 우승상에 올랐다. 화 소저와 옥낭 사이에 4남 3녀를 두어 영화가 찬란하였다. 이후 연왕(燕王)의 모반을 척결한 공으로 유춘은 연왕이 되어 두 아내와 함께 80여 년의 행복을 누렸다.
「유화기몽」은 영웅소설의 일종으로, 주인공의 출생 과정이 특이한 작품이다. 전반부는 주인공의 비정상적인 탄생과 결연 · 고난의 이야기이고, 후반부는 반적을 퇴치한 영웅적 무용담이 주가 된다. 주인공의 탄생이 영웅의 ‘이상 탄생’이라는 설화적 모티프와 상통하나, 남녀불분의 성불구자였다는 설정이 독특하다.
또한 여성의 주체적인 성과 성에 대한 긍정적인 인식이 전면에 부각되어 있다. 화 소저는 유춘이 성기가 없다는 것을 알고 음양의 이치를 모르는 인생은 사람이라 할 수 없다며 낙담한다. 그리고 옥낭도 남녀 관계에서 가장 중요한 것이 성적 결합이라면서 직접 유춘의 감추어진 성기를 꺼낸다. 이러한 점은 다른 작품에서는 찾아보기 어렵다. 더불어 남성 중심의 사회라 하더라도 성적 결함이 있는 남성은 축출당할 수 있다는 점도 보여 주고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