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치승(稚繩), 호는 소곡(素谷). 윤절(尹晢)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인교(尹仁敎)이다. 아버지는 윤동로(尹東輅)이며, 어머니는 신창맹씨(新昌孟氏)로 맹숙장(孟淑章)의 딸이다. 이조판서 윤동규(尹東奎)에게 입양되었다.
1726년(영조 2) 생원시에 합격하고 1739년(영조 15) 의릉참봉(懿陵參奉)을 제수받았다. 1740년 증광문과(增廣文科)에 병과로 급제한 뒤 1744년 시강원겸설서가 되었다. 같은 해에 홍문관수찬을 제수받아 이조판서 이종성(李宗城)과 함께 『속오례의』를 편찬하였다.
이 때 개원례(開元禮)에 의거하여 원본을 개정하는 한편, 그 차이점을 상세히 밝히고 문구를 교감하여 별도로 「고이(考異)」를 첨가하기도 하였는데, 그 뒤 예(禮)에 밝다고 인정받아 여러 편찬사업에 참가하였다.
뒤에 사헌부지평에 제수되었으며, 이어 교리·사간·필선·승지·공조참의·이산부사(理山府使)·병조참판 등을 역임하였다. 1755년 윤지(尹志)의 난에 관련되어 투옥되었고, 1776년(정조 즉위년)에는 정후겸(鄭厚謙)의 일파로 몰려 유배되기도 하였다.
그러나 그때마다 무고함이 밝혀져 복직되었다. 1786년 자헌대부지돈녕부사(資憲大夫知敦寧府事)가 되어 기로사(耆老社)에 들어갔다. 저서로는 『소곡유고』 22권이 있고, 편서로는 『명재연보(明齋年譜)』가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