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택중(擇中). 윤공(尹恭)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사정(尹士貞)이다. 아버지는 사평(司評) 윤원(尹轅)이며, 어머니는 김광호(金光虎)의 딸이다.
1567년(명종 22) 사마시에 합격하여 생원이 되고, 1580년(선조 13) 알성문과에 병과로 급제한 뒤, 성균관의 여러 관직을 거쳐 형조좌랑을 지냈다. 1592년 임진왜란이 일어나자 황해도도사로서 유근(柳根)·윤자신(尹自新)·이정립(李廷立)을 도와 개성의 목청전(穆淸殿)에 묻어두었던 종묘의 신주(神主)를 평양까지 옮기는 데 호위하였다.
이듬해 예조정랑을 거쳐 부평부사가 되었다가 무고로 탄핵을 받고 해임되었다. 다시 기용되어 장흥부사·평산부사·양주목사를 거쳐, 제용감정(濟用監正)·내섬시정(內贍寺正)을 지낸 뒤 1601년 봉상시정(奉常寺正)으로 평안도재상경차관(平安道災傷敬差官)이 되었다.
이 때 시위하는 사람을 너무 많이 거느리고 가서 열읍(列邑)에 폐가 많다고 탄핵을 받아 양재도찰방으로 좌천되자 벼슬에 뜻을 잃고 병을 핑계로 사직하고 한가롭게 지냈다. 인조반정 뒤 도승지에 추증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