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이원(而遠), 호는 사정(思亭). 부사 윤건(尹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승지 윤기상(尹起祥)이다. 아버지는 직장 윤영(尹瑛)이며, 어머니는 한흥군(韓興君) 이덕연(李德演)의 딸이다.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28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을 역임하고, 정언·지평·병조좌랑·교리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공양이 남달랐다. 1634년 인조가 사친(私親)인 정원군(定遠君)을 추숭하려고 하자 양사가 이를 반대하니, 인조가 양사 장관의 벼슬을 좌천시켰다.
이에 윤명은도 지평으로서 사친추숭(私親追崇)을 반대, 경성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풀려나와 고향에 은거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양에 나아가, 조익(趙翼)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강화에 건너갔는데 강화가 함락되었다.
난이 끝난 뒤 서천군수·청주목사를 역임하고 집의·동부승지를 지냈으며, 1645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가 사직하였다. 남포(藍浦)에 돌아와 어머니를 모시며 농사를 짓고 낚시질을 하며 지내다가 죽었다. 윤명은의 지극한 효행이 널리 알려져 정문이 세워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