윤명은 ()

조선시대사
인물
조선 후기에, 병조좌랑, 동부승지,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이칭
이원(而遠)
사정(思亭)
인물/전통 인물
성별
남성
출생 연도
1601년(선조 34)
사망 연도
1646년(인조 24)
본관
파평(坡平, 지금의 경기도 파주)
주요 관직
정언|병조좌랑|서천군수|동부승지|전라도관찰사
관련 사건
병자호란
정의
조선 후기에, 병조좌랑, 동부승지, 전라도관찰사 등을 역임한 문신.
개설

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이원(而遠), 호는 사정(思亭). 부사 윤건(尹健)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증승지 윤기상(尹起祥)이다. 아버지는 직장 윤영(尹瑛)이며, 어머니는 한흥군(韓興君) 이덕연(李德演)의 딸이다.

생애 및 활동사항

1624년(인조 2) 사마시에 합격하여 진사가 되고, 1628년 별시문과에 병과로 급제, 검열을 역임하고, 정언·지평·병조좌랑·교리가 되었다. 어려서부터 효성이 지극하여 부모공양이 남달랐다. 1634년 인조가 사친(私親)인 정원군(定遠君)을 추숭하려고 하자 양사가 이를 반대하니, 인조가 양사 장관의 벼슬을 좌천시켰다.

이에 윤명은도 지평으로서 사친추숭(私親追崇)을 반대, 경성에 유배되었다. 이듬해 풀려나와 고향에 은거하였다. 1636년 병자호란이 일어나자 남양에 나아가, 조익(趙翼)과 함께 의병을 모집하여 강화에 건너갔는데 강화가 함락되었다.

난이 끝난 뒤 서천군수·청주목사를 역임하고 집의·동부승지를 지냈으며, 1645년 전라도관찰사가 되었다가 사직하였다. 남포(藍浦)에 돌아와 어머니를 모시며 농사를 짓고 낚시질을 하며 지내다가 죽었다. 윤명은의 지극한 효행이 널리 알려져 정문이 세워졌다.

참고문헌

『인조실록(仁祖實錄)』
『국조방목(國朝榜目)』
『사마방목(司馬榜目)』
『송자대전(宋子大全)』
『국조인물고(國朝人物考)』
집필자
유병용
    • 본 항목의 내용은 관계 분야 전문가의 추천을 거쳐 선정된 집필자의 학술적 견해로, 한국학중앙연구원의 공식 입장과 다를 수 있습니다.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은 공공저작물로서 공공누리 제도에 따라 이용 가능합니다. 백과사전 내용 중 글을 인용하고자 할 때는 '[출처: 항목명 - 한국민족문화대백과사전]'과 같이 출처 표기를 하여야 합니다.

    • 단, 미디어 자료는 자유 이용 가능한 자료에 개별적으로 공공누리 표시를 부착하고 있으므로, 이를 확인하신 후 이용하시기 바랍니다.
    미디어ID
    저작권
    촬영지
    주제어
    사진크기