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파평(坡平). 자는 거용(巨容). 윤욱(尹頊)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지임(尹之任)이다. 아버지는 첨지(僉知) 윤원로(尹元老)이며, 어머니는 이량(李亮)의 딸이다. 부인은 중종의 맏딸 효혜공주(孝惠公主)의 딸 김씨이다.
1562년(명종 17) 별시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여 이듬해 세자시강원필선을 거쳐 사간이 되었다. 본래 명종의 모비 문정왕후(文定王后)가 고모로서 외척이었으나, 작은아버지 윤원형(尹元衡)이 세력다툼 끝에 아버지를 죽인 것에 원한을 품고 있었다.
때마침 윤원형의 횡포가 심하여지자 이를 견제하기 위하여, 명종이 중용한 명종비 인순왕후(仁順王后)의 외숙 이량(李樑)이 득세하자, 이량의 당여가 되었다. 급제 후 1년 만에 사간이 되고, 그 세력기반을 점차 확고히 하였다.
그러나 1563년 장차 사화를 일으켜 사림을 모두 숙청하려던 이량 일당의 음모가 대사헌 기대항(奇大恒)에 의하여 탄로가 나, 이량·이감(李戡)·신충헌(愼忠獻)·권신(權信)·이영분(李翎分) 등과 함께 6간(奸)으로 지목되어 파직당하고 회령으로 유배되었다.
그 뒤 1565년에 문정왕후의 유언에 따라 가까운 곳으로 이배되었으며, 다시 1577년(선조 10)에는 간성으로 이배되었다가 풀려났다. 1589년에 가정불화로 가족들에 의하여 독살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