충청남도 청양 출신. 1919년 3·1운동 이후 만주로 건너가 의열단원이 되었다. 1922년 의열투쟁의 임무를 띠고 국내로 잠입, 유석현(劉錫鉉) · 김지섭(金祉燮) 등과 함께 사이토[齋藤實] 총독의 암살을 기도하였다.
총독부 · 동양척식회사 · 조선은행 등을 폭파할 목적으로 먼저 자금조달 계획을 세웠다. 그리하여 같은해 12월 23일 유석현 · 김지섭 등과 같이 서울 무교동에 사는 부호인 조선총독부 판사 백윤화(白允和)의 집을 찾아가 5만원을 요구하였으나 불가능하다고 하여 1만원을 내라고 하였다. 백윤화는 2000원을 약속했으나 거짓이었다.
그 뒤 25일 밤 유석현과 함께 약속된 자금을 받기 위하여 백윤화의 집을 찾아갔으나, 잠복중이던 일본경찰에게 붙잡히게 되었다. 시국표방강도죄로 중형을 선고받고 서대문형무소에서 복역하는 가운데 혹독한 옥고를 치르다가 옥중에서 순국하였다.
1962년에 건국훈장 독립장이 추서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