본관은 칠원(漆原). 자는 자임(子任). 윤천이(尹天怡)의 증손으로, 할아버지는 윤삼(尹參)이다. 아버지는 윤사(尹思)이며, 어머니는 김맹상(金孟常)의 딸이다.
1462년(세조 8) 진사가 되고 1472년(성종 3) 식년문과에 을과로 급제하였다.
그 뒤 여러 관직을 거쳐 1480년 사간원정언이 되어, 유자광(柳子光) 등과 파당을 만들어 횡포를 자행한 임사홍(任士洪)에게 극형에 처하지 않고 유배로써 그친 것을 비판하였다. 또 이듬해에는 의정부·육조·대간의 어느 곳에서도 천거를 받지 못한 신정(申瀞)이 평안도관찰사로 임명되자, 이의 부당함을 상소하였다.
풍기군수·성주목사 등 여러 곳의 수령을 거쳐 1495년(연산군 1) 사간이 되었고, 그 뒤 홍문관직제학을 거쳐 1504년 대사간이 되었다. 이 해에 갑자사화가 일어나는 등 실정을 거듭하는 연산군에게 충언을 하다가, 강음(江陰)으로 유배되었으며 유배지에서 이듬해 죽었다.
1506년 중종반정으로 연산군이 폐출된 뒤 도승지에 추증되었다. 오랜 간관생활 중 직언을 잘 하였으며, 생전의 청렴결백한 공직생활로 1506년(중종 1) 염근리(廉謹吏)에, 선조 때 청백리에 녹선되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