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울 출생. 서울의 휘문고등보통학교를 거쳐 일본의 도쿄미술학교(東京美術學校) 조각과에 유학하여 1939년에 졸업하였다.
미술학교 재학 때인 1938년 조선미술전람회 조각부에 웅크린 나녀상(裸女像)을 주제로 한 「한일(閑日)」이 처음 입선한 데 이어서 1940년부터 1942년까지 한복을 입은 모습의 「어느 여인」, 나체상의 「피리 부는 소녀」, 「청년들」이 연속 입선하였다.
8·15광복 직후 1946년 서울대학교 예술대학이 창설될 때에 미술학부 조각과 교수가 되어 후진 육성에 힘쓰는 한편, 조선조각가협회 결성(1946)에도 참가하였다. 1949년 제1회 대한미국미술전람회에서 조각부 추천작가로 추대되었고, 심사위원에 위촉되었으나 작품을 출품하지는 않았다.
대표작으로 꼽히는 1941년의 조선미술전람회 출품작 「피리 부는 소녀」(원작은 석고, 1971년 청동으로 주조, 국립현대미술관 소장)는 정확한 균형과 사실적 표현이 두드러진 작품으로 평가된다. 이밖에 경주시 경주중고등학교에 있는 설립자 청동좌상이 현존하고 있으며 이승만 대통령의 흉상을 제작하였으나 6.25 전쟁때 소실된 것으로 전해진다. 6·25 전쟁 발발 직후 좌익계열에 잡혀간 뒤 행방불명이 되었다.